정세영 체육부 차장

체육계에선 ‘핵폭탄급 뉴스’라고 표현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승리한 유승민 당선인을 두고서다. 이번 선거는 이기흥 현 회장의 압승이 예상됐다. 이 회장은 온갖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으로 꼽혔다. 유 당선인을 포함한 도전자들이 이 현 회장을 넘어뜨리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유될 만큼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다윗’ 유 당선인은 ‘골리앗’ 이 현 회장을 이겼다. 21년 전 2004 아테네올림픽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당시 유 당선인은 탁구 남자단식 결승에서 세계 최강이던 중국의 왕하오를 4-2로 눌렀다. 유 당선인은 앞서 6전 6패를 당했던 왕하오를 만나 결정적인 순간 설욕하며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대한체육회장은 ‘체육대통령’에 비유된다. 총 84개 종목 단체를 총괄하는 수장이자, 연간 4000억 원이 넘는 체육회 예산 집행의 최종 결정권자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도 함께 아울러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유 당선인의 어깨는 더 무겁다.

지난해 대한체육회발 추문이 잇따르면서 한국 체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믿음이 추락했다. 특히, 2024 파리올림픽을 전후로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및 특별 감사에 나섰다. 여기에 이 회장이 문체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4400억 원 규모였던 체육회 예산에서 1000억 원 정도가 삭감됐다. 이 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이후 체육회는 지난 수개월 동안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리는 수장 없이 버텼다. 당연히 업무 추진 동력이 상당히 떨어졌고, 내부에서는 ‘내 편·네 편’의 내부 갈등이 극에 달했다.

과거엔 동·하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게 체육회장의 가장 큰 임무였다. 유 당선인 역시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과 재임 기간 열리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 2026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유 당선인에겐 정부와 관계를 회복해 이 회장 시절 1000억 원 가까이 삭감된 체육회 예산을 회복하고, 내부 갈등을 빚었던 체육회 조직을 정상화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특히, 정부와 관계 회복은 유 당선인이 풀어야 할 최대 숙제다. 다행인 것은 이 회장이 낙선하면서 체육회와 정부의 갈등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울러 유 당선인은 최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정부와 꼬였던 매듭을 풀 적임자로 보인다.

국제대회 성적은 다음 대회에서 극복할 수 있지만,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데는 얼마의 노력과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체육회장은 정치인이 아니다. 향후 우리 체육의 또 다른 100년을 설계할 전문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리더여야 한다. 편을 갈라 싸우고 있기에는 체육회의 상태가 위중하다. 새 수장은 강력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유 당선인은 약속대로 체육 통합의 시대를 열기 바란다. 새로 임기를 시작할 유 회장이 전환기 대한민국 체육 정책의 틀을 든든히 다진 인물로 기록되기 바란다.

정세영 체육부 차장
정세영 체육부 차장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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