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나훈아 ‘사내’
예능 선배에게 ‘태평가’(신민요)를 들려드렸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그런데 반응이 시원찮다. 호응은커녕 ‘지금 그런 노래가 어울리는 분위기냐’ 나무라는 듯하다. 수심에 잠긴 이유를 여쭈니 불쑥 휴대전화를 내민다. 큼지막하게 일곱 글자가 영화제목처럼 뜬다. ‘우리는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보곤 상황 파악이 어려워 노래 한 곡을 더 장전한다. ‘꿈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고’(god ‘촛불 하나’) 원로들의 새해 다짐이려니 긍정 해석을 시도했는데 실상은 정반대. 세 번째 노래에서야 실마리를 찾았다. ‘이런 말을 꺼내야 하는 나도 너무 슬프지만 이제는 너를 놓아주려 해’(이상은 ‘여기까지’) 몇 십년지기 절친이 최근 절교 선언을 문자로 발송한 거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너 그럴 줄 몰랐다. 이 말보다 심한 말이 있다. 너 그럴 줄 알았다. 계기는 나훈아였다. 은퇴 공연에서 남긴 작심 발언을 두고 둘 사이에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지그재그로 내용을 재구성해본다. “역시 가황이다” “가황이면 가황다워야지” “노래 잘하면 됐지 뭐” “시각이 꼬였잖아”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인데 뭐” “한쪽이 잘못했는데 싸잡아 야단치는 게 맞는 건가”
잘 달리던 우정 열차는 왜 그 역에서 멈춰 섰을까. 비대면 대화가 진행되면서 두 친구의 레일이 (나훈아가 언급한) 왼쪽 오른쪽으로 상당히 벌어져 있음이 드러난 거다. 헤어질 결심을 굳히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한 분이 집회화면에 나온 사실을 제3자(예전 동료)가 일러준 거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원곡가수 영탁) 만약 내가 ‘두 분 토론’의 방청객이라면 질문 시간에 슬쩍 이런 시(?)를 읊었을 거다. ‘난 이렇게 살다 죽을게 넌 그렇게 살다 죽으렴’ 자작시에 내가 붙인 제목은 ‘저주’가 아니라 ‘존중’이다.
좋은 친구의 반대말은 나쁜 친구가 아니라 싫은 친구다. ‘날아가는 새 어찌하리 내가 싫으면 떠나가야지’(펄시스터즈 ‘싫어’) 새는 나무가 싫증 날 때 날아가면 되지만 사람은 날개가 없다. 새들(히트한 곡목이 ‘고니’ ‘타조’ ‘도요새의 비밀’)의 친구로 불리는 가수 이태원에게 (뜬금없지만) 잘 지내왔던 친구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묻는다면 말 대신 곧바로 노래를 시작할 것 같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이태원 ‘솔개’ 시작 부분) 내뱉는 말도 가려야 하지만 바라보는 눈도 치우치면 곤란하다. 같은 제목(‘싫어’) 다른 노래를 5인조 그룹 포미닛도 불렀는데 친구나 연인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를 똑 부러지게 정리했다. ‘답이 없는 답안에 답만 죽어라고 써 사랑에 콩깍지가 아닌 색안경을 껴’
가황은 ‘천 리 길’로 데뷔(1966)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결부 지으면 ‘돌부리 가시밭길 산을 넘어 천 리 길’로 시작하는 그 노래가 예언처럼 들린다. 돌부리는 돌의 입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마찬가지로 새들에게도 입(부리)이 있다. 새들의 친구에게 다시 묻자.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이태원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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