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尹은 구속 李·曺는 불구속 재판
커가는 보수층의 불만과 분노
보수정치 재건으로 전환할 때

이재명 수사·재판에 나비효과
저급 정치 바꿀 大亂大治 계기
윤 대통령 탈당으로 물꼬 터야


민심의 바다는 권력의 배를 띄우지만, 순식간에 뒤집기도 한다. 2500년 전 공자의 ‘군주민수(君舟民水)론’을 계엄 사태만큼 극적으로 입증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은 몇 시간 만에 내란 우두머리로 전락하고 47일 만에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사안의 성격과 경중은 다르지만, 이런 외형상 불균형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쌓이면서 급기야 법원 난입 사태까지 일어났다.

때로는 분노가 역사의 동력이 된다. 4·19 민주혁명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등이 그렇다. 이때 필요충분조건은 압도적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 이번 비상계엄은 정반대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국회는 폐쇄되고, 언론은 검열을 받는다. 비상 입법기관, 계엄 수사본부와 특별재판부가 꾸려지고, 영장 없는 체포와 수사가 진행된다. 국회의 해제 결의가 없었더라도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설탕을 먹여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고 범행한 것 같은 ‘불능미수’ 행위였다.

윤 대통령은 계엄 목적을 ‘국가 정상화’라고 밝혔다. 중국 마오쩌둥은 재앙으로 끝난 대약진운동 여파로 축출 위기에 처하자 대란대치(大亂大治)를 내걸었다. 큰 난리를 일으켜 일거에 통치 권력을 재장악하려는 의도였다. 윤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이미 망상으로 막 내렸다.

거대한 댐이 무너지면 아랫마을은 홍수에 휩쓸린다. 익사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떠내려가는 집과 논을 보며 울부짖는 사람, 옆 동네 나쁜 사람들 때문에 둑이 터졌다며 보복할 대상을 찾아 나서는 사람, 부질없지만 작은 둑이라도 급조해 막아보자는 사람들로 법석이 일어난다. 둑을 허문 사람이 댐 관리 책임자여서 더욱 냉철한 판단이 어렵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빨리 대피하자고 했던 사람은 엉뚱하게 도망자 취급을 받는다. 이것이 보수 정치가 처한 상황이다. 이제 폐허 위에서 집을 짓고 농토를 일구고 둑도 보수해야 한다. 그래도 옆 동네보다 낫다며 손 놓고 있다가는 머지않아 추위와 굶주림을 자초한다. 더 번듯한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선 합심과 협력이 대전제다.

세계 최장수 정당, 영국 보수당은 300년 가까이 집권당 또는 수권 정당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정당사 권위자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3대 요인으로 정리했다. 첫째, 권력에 대한 열망이다. 국익을 수호하는 애국정당으로서, 선거 승리를 최우선시한다. 둘째, 유연함이다. 9명의 역대 지도자가 이끈 9개 정당으로 불릴 만큼 시대 변화를 수용했다. 셋째, 외연 확장이다. 관세개혁 당론에 반대해 탈당했던 윈스턴 처칠을 받아들여 총리로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비상 대책은커녕 비상 인식도 안 보인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이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계엄 비판을 앞서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구속된 만큼, 여러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이 대표에 대해서도 법 집행이 단호해야 한다는 여론의 나비효과가 상당하다. 선거법 사건의 2심 판결이 법대로 2월 15일까지 내려져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내란 몰이 등 로베스피에르식 공포정치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거야 행태와 ‘비명횡사’ 공천을 보면 기우만은 아니다.

이처럼 양대 정당이 모두 치명적 리스크에 시달린다. 윤 대통령은 대란대치에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계기를 만들고 있다. 최고 실세가 공백 상태인 여당이 변화에 더 유리할 수 있다. 공자는 ‘정치는 올바름(政者正也)’이라고 했다. 지금 보수 정당에 필요한 올바름은, 계엄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자유민주 대연합을 구축해내는 일이다. 윤석열의 실패를 보수 정치 개조의 에너지로 만들어야 희망이 있다. 첫 단추가 윤 대통령의 탈당이다. 당론보다 국민 편에 섰던 ‘계엄 반대, 탄핵 찬성’ 인사의 족쇄를 풀어주고, 자신을 밀알 삼아 정권 재창출에 나설 것을 당부해야 한다. 만에 하나, 탄핵소추가 기각돼도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은 불가피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대통령도 보수 정치도 거대한 저항에 직면해 공멸한다.

이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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