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에 남편(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28년 동지로 살며, 생각해 보면 큰 바람 없이 잔잔하게 보낸 듯하다. 그 잔잔함의 온화함이 감사할 뿐이다.
지난가을에 남편(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28년 동지로 살며, 생각해 보면 큰 바람 없이 잔잔하게 보낸 듯하다. 그 잔잔함의 온화함이 감사할 뿐이다.


■ 사랑합니다 - 어린 시절 ‘도루묵’ 추억을 되살려준 남편

“조선 14대 임금 선조께서 피란길에 맛을 보고는 그 좋은 맛에 반하여 ‘은어’라 명명하였으나 이후 다시 맛본 은어는 예전 그 맛이 나지 않아 다시 이렇게 불리었다 합니다. 이 생선의 이름은?” 아침 시간 박명수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퀴즈.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온다.

‘도루묵’. 참 특별한 사연이 있는 생선이다.

1997년 3월 말에 결혼한 우리는 ‘결혼기념일’이라 하여 특별한 이벤트나 여행은 딱히 없었다. 1주년 기념 강원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해 그 여행도 강원도에 있는 남편 친구와의 만남이 목적이었던 걸로 본다면 나를 위한 이벤트성 여행은 여태 한 번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여행마저도 ‘다들 어려운 IMF 시기에 무슨 여행이며 친구한테도 민폐인데’라며 시어머니로부터 걱정을 들었던 여행이었다.

그 시절 차도 없었던 신혼이어서 둘이서 가방 하나씩 메고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3월 말이라 봄의 초입이라 해도 강원도의 추위는 겨울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 첫날 올랐던 설악산엔 눈이 내렸고 아이젠을 착용하고야 오를 수 있었다.

설산의 절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대포항’으로 향했다. 시장 초입의 줄 선 튀김 포장마차를 보며 눈으로 침을 삼키면서도 좀 더 가보면 더 맛난 먹거리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인파에 밀려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어릴 적 우리네 부엌의 모습이 내 발걸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화덕에 연탄을 피우고 석쇠에 나란히 누운 ‘도루묵’.

하얀 알이 벌금벌금 배에서 터져 나와 먹음직하게 생긴 모습으로 나를 잡아 이끌었다. 얼마냐는 내 물음에 만 원이라는 답을 주시는 그 할머니의 주름진 모습 역시도 과거를 추억하기에 충분했다. 그걸 한참 동안 (아마도 그리 한참은 아니었겠지만 내겐 꽤 긴 시간의 집중이었다) 보고 있던 나를 잡아끄는 남편의 손과 빨리 가자 하는 목소리에 연탄불에 석쇠를 깔고, 덮고 있던 그 아이들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남편은 펄떡거리는 생선회를 사주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엔 그 도루묵만 가득차 싱싱한 회의 물컹거림만 기억될 뿐이다.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기념일 여행은.

어느 날 TV를 보다가 나온 대포항을 두고 그날의 내 서운함을 친정식구들에게 고자질한 후 식구들은 ‘도루묵’ 얘기만 나오면 남편을 놀린다. “어휴~도루묵도 못 얻어먹는 주제에…”하며 놀리는 여동생과 “처형, 제가 사드릴게요”하며 틈새 공약을 하는 제부와 “말짱 도루묵이다”하는 엄마까지.

그 누구도 만 원짜리 생선구이 대신 삼만 원어치 회를 사줬다는 현실로 남편을 변호할 생각은 안 한다. “지금 갈까? 사줄게”하며 옷 입는 시늉까지 하는 남편 역시 스스로도 더 비싼 거 사줬잖아 하는 자기변명도 할 법한데 안 한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생선을 못 먹었다는 단순함 이면에 어릴 적 연탄 화덕에 생선 굽는 냄새가 집 안은 물론 온 골목에 진동하면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밥을 먹던 유년의 흐릿한 기억에 사로잡혀 입맛 다신 열 몇 살의 그날의 나를 추억하는 나를. 애먼 사람 된 우리 남편만 여태 놀림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루묵’ 얘기만 나오면 피식하고 웃음을 삼킨다.

하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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