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US스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존 피어폰트 모건과 손잡고 1901년 설립한 철강 회사다. 20세기 미국의 산업화를 이끈 핵심 기업으로, 제2차 대전 때 전투기와 군함, 탱크, 총, 폭탄에 들어가는 철강은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US스틸 덕분에 미국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이 회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일본과 유럽, 중국 철강회사의 공세에 밀리며 쇠락했고, 결국 지난 2023년 말 일본제철에 149억 달러(약 21조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됐다.

US스틸 주주들도 거래에 찬성해 인수전은 순항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US스틸 본사가 경합주(州)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탓에 민주당·공화당 양측 모두 US스틸 매각에 반대했다. 결국, 20일 퇴임에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매각 불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공급망 동맹을 내걸고 ‘프렌드 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과도하다. 그럼에도 미국 대표 기업을 동맹국에 넘길 수 없다는 국민 정서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막바지에 도달했다. 고려아연과 영풍 대주주의 뿌리 깊은 갈등에서 시작된 싸움에 사모펀드 MBK가 개입하면서 ‘한국판 US스틸 매각전’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기고문에서 ‘MBK 주요 투자자 중에는 중국투자공사(CIC)가 포함돼 있다’면서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핵심 인사가 고려아연 사태에 우려를 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공급망 분리가 가속화하는 신냉전 시대 세계 2위의 정련아연 생산 기업인 고려아연이 중국에 넘어갈 경우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23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집중투표제를 제안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 선임은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핵심 기업을 지키는 게 이토록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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