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부장

이순재 구순 첫 연기대상 감동
우리 기업 임기 제한 규제하나
美 등 해외 기업은 앞다퉈 완화

나이 무관하게 중용 사례 많아
경영자 잘못 바꾸면 회사 흔들
신뢰받은 CEO 임기 보장 중요


지난 11일 배우 이순재가 구순의 나이에 생애 첫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지상파 3사 연기대상을 통틀어 역대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던 그는 후배 배우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미국 배우 캐서린 헵번은 30대에 한 번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60세 이후에 3번을 더 받았다”면서 “나이 먹어도 잘하면 상을 주는 거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밝히며 동료 배우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연기는 나이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그의 진심 어린 소감은 인기나 외모 등 다른 조건이 최우선으로 평가되던 연예계 전반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됐다.

이러한 나이 제한에 대한 인식 변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유분산기업 다수는 아직도 CEO의 의무 퇴직 연령 또는 임기 제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소유가 분산돼 있는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에서 CEO와 이사회 간 밀착관계가 형성될 경우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다. 국내 금융지주들도 CEO 연령 제한을 70세 미만으로 하는 내규 등을 도입했다. 나이 제한 기준을 70세로 둔 배경에는 도입 당시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령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최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일본 등의 글로벌 기업에서는 전통적인 CEO의 임기와 퇴직 연령에 관한 고정관념이 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S&P500 주요 기업은 65세였던 이사 퇴직 연령을 72∼75세로 늘리거나 아예 연령 및 임기 제한을 삭제하는 등 내부 규정을 완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CEO를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실적과 주가가 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실적과 주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온 유능한 리더들의 임기 보장을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실례로 미국 JP모건의 경우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CEO 취임 전인 2005년 순이익이 84억8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JP모건의 2023년 순이익은 495억5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다이먼 취임 후 18년 만에 5.8배 넘게 급증했다. 재임 기간 평균 자본이익률 11.1%, 주가상승률 8.0%로 안정적인 경영 성과를 창출해온 다이먼은 능력을 인정받아 2005년 취임 후 현재까지 19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CEO의 잦은 교체는 회사 경영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CEO의 교체로 인한 회사 전략의 잦은 변화는 경영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해침으로써 장기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 인터넷기업 야후에선 2007년부터 10년 동안 총 5명의 CEO가 거쳐 갔다. 각 CEO의 M&A와 중점 사업에 대한 전략이 극명하게 갈리며 경영의 연속성이 저해되고 사업의 방향성에 혼선이 생기며 시장 내 포지션이 불명확해졌다. 이로 인한 회사의 불확실성 확대로 직원들의 퇴사와 잦은 인사 변화가 이어지며 구글, 메타 등 경쟁 상대들에 한참 뒤처지게 됐다.

경영 능력을 입증했던 CEO를 재고용해 경영 악화에 대응한 사례도 있다. 미국 디즈니에 2005년 CEO로 취임한 밥 아이거는 2020년까지 평균 영업이익률 18.7%를 기록할 정도로 회사를 잘 이끌었다. 아이거 퇴임 후 주가 폭락, 사업 부진, 내부 갈등 심화로 상황이 악화하자 디즈니는 2022년 말 시장과 주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아이거를 CEO로 재기용했고, 이후 주가는 2023년 2%, 2024년 23% 상승했다.

CEO의 선임과 임기는 시장과 주주의 결정사항이다.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장수 CEO라는 이유로 능력과 성과가 과소평가되거나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 이미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는 검증된 경영 성과와 경륜을 두루 갖춘 CEO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상태다. 배우 이순재 사례가 설명하듯 지금이라도 투명한 지배구조 규정과 공정한 후계자 양성제도를 보유한 기업에서 시장과 주주로부터 신뢰를 받아 선임된 CEO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