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역으로 보는 을사년

2025년은 뱀띠 해로 을사(乙巳)년이다. 巳는 방위로 보면 동남방, 시간으로는 입하(立夏)에 해당하고, 하루로 보면 오전 10시 전후다. 乙은 목(木)에 해당하고 푸른 청색이다. ‘을사’는 60간지(干支) 조합 중 마흔두 번째인데,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점괘(占卦)를 지어 보면 ‘乙’은 못(澤)이 돼 위에 올려지고, ‘巳’는 수(水)가 돼 땅 아래에 놓인다. 따라서 ‘택수곤괘’. 주역은 괘의 상징과 의미로 한 해의 운(運)을 유추한다. 그렇다면 을사년 한반도의 시운은 어떤 형상일까. 주역학자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 교수가 이를 점쳐 보았다. 최 교수는 “주역은 점서(占書)로 출발했으나, 유교 경전 중 하나로 합리적인 해석을 중시하는 철학서로 변모했다”면서 “정해진 것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수곤괘… 곤궁한 시기를 건너가야 한다 = 곤은 곤할 곤(困)자로 곤궁, 곤란, 피곤의 의미이다. 물이 못의 위에 있으면 물이 차있는 형상인데 곤괘는 물이 못의 아래에 있어서 물이 다 새어나간 형상이다. 물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모든 생물이 곤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이다. 한반도에 대입하면, 계속되는 인구감소와 경제적인 곤궁함과 닿아 있다. 개인으로 보면 통장 잔고가 빈약한 상이고, 국가로 보면 재정의 결핍, 지구적으로는 서민들의 생계가 힘들어진다는 암시다.
困의 형상은 우리 안에 갇힌 나무다. 나무(木)는 발산(發散)하는 성질을 지녀 가지가 쭉쭉 뻗어 나가야 하는데 우리(口) 안에 갇혀 있으니 곤란하다. 이는 국제간의 고립정책 강화를 암시한다. 고립시키는 강자와 고립당하는 약자의 극한 대립이 점쳐지며 한반도의 외교 통상적 고립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북관계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될 것이다. 또, 명랑한 기운이 암울한 기운에 가려지니 우울증과 같은 증세가 만연하고,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많은 사람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실직이나 해고로 인한 일자리 문제도 커진다.
◇제곤궁통…궁통(窮通)의 이치를 믿어보자=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대책을 문제 자체에서 찾아보려는 것이 ‘주역’의 방법이다.
치유와 재생이 급선무다. 지난해 온 국민이 큰 사건·사고로 상처를 받았는데, 올해 경제적 전망까지 힘들다면 그 피곤함이 더할 것이다. 법구경(法句經) 교학품(敎學品)에서는 사람이 생사윤회의 고통을 제도하는 것을 사탈고피(蛇脫故皮)라 했다. 즉, 뱀이 옛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뱀이 정기적으로 탈피해 손상된 비늘을 재생하는 걸 상기하자.
전국책(戰國策)에는 뱀을 그리는데 발을 첨가했다는 ‘화사첨족(畵蛇添足)’이란 고사가 있다. 초(楚)나라의 소양(昭陽)이 위(魏)나라를 치고 다시 제(齊)나라를 치려 하자 제나라의 세객(說客) 진진(陳軫)이 소양을 찾아와 설득했다. 위나라를 치고 또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 것은 뱀을 다 그려놓고 쓸데없이 발을 그려 넣는 꼴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소양은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덧붙여 하다가 일을 그르칠 때 사족(蛇足)이라 한다.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에 대비해 과잉소비를 줄여 나가라는 절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당(唐)나라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고사가 나온다. 한 수령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러자 백성들은 수령에게 그 부하들의 부정부패 사실을 낱낱이 들며 호소했다. 수령은 깜짝 놀라 ‘너희들이 비록 풀을 두드렸지만 나는 이미 놀란 뱀이 됐다(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라고 했다. ‘경사(驚巳)’라 했으니 뱀의 해인 올해 한반도 주변에 여느 해보다 놀랍고 두려운 공경지사(恐驚之事)가 있으리라 예측된다. 우리를 둘러싼 외교 정세로 인한 일들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원망을 줄이고 협조자를 만나라=형편이 어려워지면 원망이 들기 쉽다. 곤궁함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마음에 하늘, 조상, 남을 탓한다. 이것이 극에 달하면 무차별 분풀이가 된다. 그러나 곤궁함도 궁극에 다다르면 전변(轉變)해서 통하는 이치가 있으니, 이른바 ‘궁하면 통한다’는 그것이다. 그런데, 인간사회의 궁통(窮通)의 이치는 자연과 달라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곤궁함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역은 곤궁할 때의 객관적 구조를 변화시키고 주관적 심리를 다스리라고 한다. 변화는 자신을 필요로 하면서 힘을 합해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곤궁할 때의 처신에서 군자인지 소인인지를 알 수 있으니, 궁할수록 본심을 지키고 노력해야 막힌 것이 뚫려 통한다. 주관적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은 원망을 줄이는 일. 곤궁함의 연유를 성찰하면 결국 다 내 탓이다. 맹자도 ‘남에게 사랑을 주었는데도 친해지지 않거든(愛人不親) 나의 사랑을 돌이켜보고(反其仁), 남을 다스리려 하는데도 다스려지지 않거든(治人不治) 나의 지혜를 돌이켜보고(反其智), 남에게 예를 차렸음에도 답이 없거든(禮人不答) 나의 공경을 돌이켜보라(反其敬)’고 했다.
◇창의적 지혜가 필요하다 =뱀의 마음에 부처의 입이란 뜻의 사심불구(蛇心佛口)란 말이 있다. 뱀은 교활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교활함을 전변하면 지혜다. 뱀은 중국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복희의 후예라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과도 관련이 있다. 태극기 안에 있는 팔괘 부호를 창안한 이가 복희씨(伏羲氏)로 전해지는데, 그가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인수사신(人首蛇身)이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따라서 뱀은 일찍부터 지혜와 창조의 아이콘이었다.
끝으로 용두사미(龍頭蛇尾). 뱀은 마무리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의 상징이다. 세상일에 성공이 적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끝을 맺지 못하는 데 있다. 최 교수는 “중요한 처음과 끝을 소외시키는 거두절미(去頭截尾), 한쪽으로만 편 가르기를 해 취하는 어두육미(魚頭肉尾), 처음만 거창하고 끝을 거두지 못하는 용두사미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철두철미(徹頭徹尾)의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최정준 교수는…

정리=박동미 기자, 도움말=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 미래예측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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