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긴 몸뚱이, 소리 없이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까지.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장본인인 뱀은 교활함의 대명사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어요.”
동물민속학의 권위자인 천진기(사진) 국립무형유산위원장은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을 맞아 뱀의 외형 뒤에 감춰진 문화적 상징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과 ‘풍요’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했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겨울잠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뱀을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인식했죠.”
천 위원장은 “뱀처럼 겨울잠을 자다가 다시 살아나는 곰이 웅녀(熊女)로 변해 단군을 낳았듯이 뱀의 재생 능력 또한 전통문화 곳곳에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고구려의 벽화고분(壁畵古墳)과 신라 시대에 제작된 토우(土偶), ‘삼국유사’ 중 ‘박혁거세’ ‘경문왕’ ‘가로국 김수로왕’ 등에서 뱀은 무덤의 수호신으로 등장하며 죽은 이의 환생(還生)과 영생(永生)을 기원하는 존재로 형상화됐다.
또한 뱀이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뱀은 사랑할 때 서로의 몸을 휘감고 머리를 마주합니다. 그 모습이 고구려 삼실총의 ‘교사도(交蛇圖)’,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를 그린 그림 ‘복희여와도(伏羲女왜圖)’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두 마리의 뱀이 서로 꼬리를 휘감되 배 부분이 서로 떨어졌고, 다시 가슴 부분에 얽혀서 머리가 서로 맞보고 있는 형상은 그 자체로 천지개벽, 생명탄생, 문화창조 등의 위업을 남긴 복희와 여신 여와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통해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천 위원장은 이런 뱀의 속성과 관련해 “가옥의 가장 밑바닥에 살면서 집을 지키는 신격(神格)인 업신(業神)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집 안의 재물을 지키는 업신인 뱀은 집 안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잡아먹어요. 업신이 집 안에 있으니 쥐가 없어지고, 재물이 지켜지죠. 그런 업신이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먹거리인 쥐가 없다는 것이고, 집 안에 쥐가 없다는 것은 쥐의 먹거리인 곡식이나 식량이 없다는, 가난한 집안이 됐다는 뜻이 됩니다. 사람과 뱀은 먹이사슬 상에서 협력하는 존재인 셈이죠.”
서양 문화도 살펴보자면 고대 그리스의 뱀은 지혜의 신인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이었으며, 이후 논리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잎새의 흔들림 소리로 제우스의 신탁을 알려주는 도도나의 나무에도 뱀이 있었고, 트로이의 패망을 예언한 카산드라도 뱀으로부터 예언 능력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뱀은 그리스 신화 속 ‘의술(醫術)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의 문양, 군의관의 배지에는 뱀이 감긴 도안이 사용된다.
천 위원장은 끝으로 “눈꺼풀이 없어 무섭게만 느껴지는 뱀의 눈은 결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족(蛇足)’이듯 “다리가 없는 뱀은 후퇴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물을 벗듯 자기 혁신을 이뤄, 그저 앞만 보고 전진하듯 무한히 발전하는 을사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