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유원빌딩에 위치한 단체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웰다잉을 위한 준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유원빌딩에 위치한 단체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웰다잉을 위한 준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Q. 정치가 희망 앗아간 시대, 개인·사회의 안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사생결단 대결하는 ‘정치 부족주의’에 희망 사라진 국민
책임정치 가능하도록 국가시스템 바꿔야 트라우마 해소

‘1000만 노인 시대’ 노년층 위한 교육·제도 보강 필요
상속계획 수립·연명치료 거부땐 사회적 비용 수조 절감


인터뷰 = 신보영 정치부장 boyoung22@munhwa.com
정리 = 김대영 기자 bigzero@munhwa.com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집단 트라우마’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평온한 일상이 산산이 깨지는 충격을 겪었다면, 동영상으로 목도한 ‘12·29 무안 제주공항 참사’는 인재(人災)에 따른 예기치 않는 죽음에 대한 집단적 애도를 경험했다. 이후에도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까지 1987년 민주화 이후 축적해온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히는 이례적 현상을 줄줄이 목격하고 있다. 원숙한 정치 리더십과 대화·타협, 사회통합의 가치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는 ‘공기’와 같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지금, 우리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권에 투신, 5선의 국회의원과 2·3대 부천시장을 역임한 뒤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한 원혜영(74)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에게 정치가 희망을 앗아간 시대에 개인과 사회의 안위를 되찾을 길을 물었다. 원 공동대표는 유언장과 ‘인생 노트’ 작성 등 웰다잉을 위한 첫걸음이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묵상’이 될 수 있고, 향후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 공동대표는 정치에 대해선 “당분간은 현 상황에서 헤어나갈 길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집단 본능으로 갈라진 부족처럼 사생결단 대결이 이어지는 ‘정치적 부족주의(Tribalism)’에 휩싸여 있기 때문으로, “책임정치 구현이 가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게 점쳤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웰다잉문화운동’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계엄과 탄핵, 항공기 참사까지 충격적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겪은 일들이 개인적으로 생애주기가 있듯 사회적으로도 사회주기가 있을 텐데,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쿠데타나 항공기 참사 같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굉장히 당황스러울 듯하다. 웰다잉이라고 하면 결국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하자는 것인데, 죽음에 대한 준비 자체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과정에서 현재 내 삶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고, 그래서 결국 잘 살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웰다잉문화운동을 펼치면서 “내 삶의 영역이 확장됐다”고 표현했는데.

“우선 올해가 한국에는 ‘초고령 사회 원년’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인데, 우리 사회가 지난해 12월로 이 기준을 넘겼다. 전 세계적으로 한 세기 안에 이뤄진 일인데, 특히 우리는 압축적으로 불과 10∼20년 만에 온 것이다. 전통적 노인의 기준은 환갑이고, 60세가 되면 조직생활에서 은퇴하는 시점인데 이후 20∼30년을 더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세대가 아닌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장수 시대’를 맞이하면서 인생 2막이 길어졌는데, 우리 사회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혀 돼 있지 않다. 은퇴 이후의 삶을 여생(餘生·남은 인생)이라고 하는데, 20∼30년이나 되는 시간을 자투리처럼 여기는 게 얼마나 잘못됐나.”

―은퇴 뒤 삶을 고민하는 분이 많다.

“학교나 직장은 좋든 나쁘든 개인 삶을 컨트롤(통제)하잖나. 은퇴한 뒤에는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무한의 자유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여간 잘 준비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새롭게 주어진 노년기에 삶의 의욕을 갖고 보람 있게 살기가 어렵다. 노년기 삶을 군더더기 비슷하게 생각하면 개인도 어렵고, 또 그렇게 무기력한 시민들을 안고 가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힘들겠나. 사회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은 노년층의 경제적 문제 부분인데,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 이 부분이 비어 있다.”

―초고령 사회 문제는 저출생 등 인구 문제와도 연관돼있는 게 아닌가.

“초고령·저출생 문제를 본원적으로 정확하게 분석해서 대응책을 세우는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노령 인구 20%면 ‘1000만 노인 시대’인데, 정부 과제로 삼아 새롭게 변화된 사회 구조를 잘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노년층을 포함한 시민 교육을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확대·심화시켜야 한다. 현재 국내 교육예산이 72조 원인데, 이 중 70조 원이 제도교육에만 쓰인다. 시민교육예산은 2조 원에 불과하다. 노년층 교육을 잘 설계하고 시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지금은 거의 방치돼 있다. 엄청난 변화가 도래했는데, ‘방 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처럼 누구도 입 밖에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웰다잉 운동이 확산하면 국가 예산을 포함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연간 100조 원 이상이 상속되는데, 수만 건의 상속 소송을 줄일 수 있고 이 중 10%만 기부가 된다고 생각해봐라. 또 국내에서 6만∼7만 명이 연명의료를 선택하지 않고 사망하는데, 연간 사망자 30여만 명 중 3분의 1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의료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수 있다. 10만 명이 연명치료 거부에 서약하면 2조 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다.”

마침 인터뷰 당일 오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이 집행됐다. ‘정치 현안은 묻지 않는다’는 사전약속하에 이뤄진 인터뷰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로 ‘동물국회’를 종식시킨 국회선진화법 산파역이었던 원 공동대표의 답변에는 착잡한 심경이 묻어나왔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체포됐다. ‘정치에 희망이 있는가’, 국민이 묻고 있다.

“굉장히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고 본다. 크게 판을 새로 짤 기회도 될 것 같은데 이 역시 쉽지 않을 듯하다. 당장 미국을 보자. 2021년 ‘1·6 미국 의회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부정선거로 패배했다면서 의회 점거를 이야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황제의 귀환’을 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부족주의’가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것 이다. 객관적 판단에 따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 편이냐 네 편이냐’만 따지는 것이다. 당분간 헤어나갈 길이 없는 것 같다.”

―왜 이런 극단적 정치 양극화가 생겨난 것인가.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Nexus)’를 보면, 컴퓨터끼리의 사회연결망을 이유로 든다. 미 의회의사당 난입 사례를 보면, 2016년 누군가가 SNS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미 의회가 소굴이라고 주장을 했다. 이후 5년 뒤 점거 사태로 체포된 상당수가 이 주장에 교화된 사람들이었다. 불과 5년 만에 SNS상으로 퍼진 주장이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통령도 유사한 생각을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결정에 대해서도 지지자들이 승복 안 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을 얘기하는 정치인이 없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AI)·SNS 등을 통칭하는 넥서스는 합리적이며 공정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회 수를 늘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니까 더 자극적으로 발언해야 ‘좋아요’가 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정보가 유통되는 데 있어 점점 단순화되고 강하고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는 이를 자극해서 정치적으로 부각하는 게 넥서스의 역할이다. 운영자들은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 SNS와 유튜브가 범람하면서 이것저것 따진 뒤 종합·절충하는 것은 하지 말자 분위기다.”

―국회선진화법 탄생 주역으로서 현재 상황을 지켜보는 게 힘들 듯하다.

“국회선진화법은 나 혼자 한 게 아니고 당시 한나라당에서도 고민하고 연구하는 정치인들이 호응해 여야가 호흡을 맞춰 끈질기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도상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책임정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정당이 국민에게 제대로 평가받고, 그 정당을 대표하는 세력이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은 진보든 보수든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결국 하나도 성공 못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1인 정당’이 되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대충 정해진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이라는 소비자를 생각해야 한다. 윽박지르면서 ‘우리 떡만 제일 맛있어’라고 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여야에서 각각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들이 부각되는 게 국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유언장 써보면 삶 풍부해져”

■ ‘마지막 이기적 결정’ 출간

80대 후반 40% 이상이 치매
‘부부 쌍방 후견’으로 대비를


죽음을 의미하는 ‘Omnes Una Manet Nox(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하나의 밤)’라는 라틴어 문구처럼, 삶은 유한하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역시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확실한 진실”을 받아들인 뒤 마지막에 대한 준비를 해야 노년의 삶이 풍부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원 공동대표는 “뭐든 연습하면 나아지듯이, 죽음에 대한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하게 되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면서 은퇴 뒤 삶의 핵심이 ‘자기결정권·주도권’ 확보라고 강조했다. 원 공동대표가 지난달 발간한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도 이를 위한 실천적 팁이 가득 담겨 있다.

―웰다잉문화운동을 설명해달라.

“웰다잉문화운동에 중요한 2개 축 중 하나는 내 생명에 대한 결정이다. 죽음을 앞뒀을 때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아닌가를 사전연명의향서를 써서 미리 결정해놓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생 땀 흘려 모은 내 재산을 내 뜻대로 잘 정리하는 일이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은 가족·지인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리 결정해놓지 않으면 나에 대한 연명치료 여부를 의사가 결정하고, 장례식은 장례업자가 결정하고, 재산 문제로 다툼이 생기면 법원이 결정하게 된다.

유언장을 쓰는 일은 삶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중간결산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언장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데, 가볍게 부담 없이 일단 써보시라. 언제든 찢고 새로 쓸 수 있다. 우리 단체에서도 변호사 17명을 자원봉사로 초빙해 법률적 요건을 갖춘 유언장 작성을 도와주고 있다.”

―올해가 우리 사회의 ‘초고령 사회 원년’이라고 했는데, 간병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될 것 같다.

“생활상에서 큰 변화는 죽음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다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병원 사망 비율이 70%를 넘는다. 요양원·요양병원 입원환자까지 따지면 곧 100만 명을 넘어설 텐데,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그나마 희망의 단초가 미국이나 유럽이 병원 사망률을 50% 이하로 크게 낮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홈케어·커뮤니티케어 등이 활성화되면 집에서 왕진 의사에게 진찰받고 요양보호사 돌봄을 받아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우리도 고민해야 한다.”

―국회의원 시절 제정에 참여한 ‘연명의료결정법’에 인공영양강제급식 거부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많이 아쉬워하는데.

“제일 먼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호흡이 끊어지면서 생명이 끝나는데, 인공호흡기 착용 여부는 선택할 수 있지만 강제급식 중단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굉장한 모순이다. 하지만 합의점이 만들어져가고 있어서, 22대 국회에서는 개정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층에서는 치매에 대한 우려가 크다.

“노인들의 최대 걱정거리다. 암에 걸리더라도 노년에는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으니 남은 시간을 내 뜻대로 보낼 수가 있다. 하지만 치매는 내가 내가 아닌 게 되기 때문에 불안감·두려움이 굉장히 크다. 현재 80대 후반의 40%, 90세 이상은 60% 이상이 치매다. 현재는 치매에 걸리면 치료를 위해 내 통장에 있는 돈을 빼기도 어렵게 돼 있다. 그래서 임의후견인이라는 제도가 있고, 더 간단한 게 부부 쌍방 후견공증이다. 비용도 1인당 10만 원으로 비싸지 않으니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해 두기를 권고한다.”
신보영
김대영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