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건강 전문가 3인, 정신적 상처 회복법 제안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 불안감
‘왜 일어났나’ 물음표 가득할 땐
투명·공정한 원인 규명이 도움
‘혐오 발언’은 자살 등 2차 가해
회복 전제조건은 ‘받아들이기’
사회적 연대 느끼면 빨리 치유
대형 재난은 사회 전체에 큰 상흔을 남긴다. 3주 전쯤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비행기란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면서 슬픔과 충격의 진폭을 키웠다. 희생자 179명은 영면에 들었지만, 유족과 국민이 겪어내야 할 트라우마는 이제 시작됐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재난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로부터 나온다고 봤다.
트라우마는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통상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위협이 되는 사건을 보거나 경험한 후 겪게 된다. 직접 경험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해도 트라우마는 생길 수 있다. 재난이 나 자신만 잘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닌 것처럼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힘으로 재난을 이겨낼 수 없는 만큼 트라우마도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트라우마의 강도는 유족과 소방관 등 대응인력, 지역주민, 일반 국민에 따라 다르다. 장례 절차를 마친 유족들은 참사 진상 조사를 통해 가족을 잃은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 이때 투명하고 공정한 진상 조사 과정은 유족들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제주항공 참사 유족의 심리지원 컨트롤타워인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트라우마 회복의 전제 조건은 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라며 “유족의 머릿속엔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가득한데, 진상 조사 과정에서 불신과 의혹이 쌓인다면 ‘수용’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참사는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재난은 우리 사회 밑바닥을 확인하게끔 한다. 재난 현장에는 여러 가치관과 정쟁이 충돌하기도 한다. 이번 참사에서도 지역과 보상금을 둘러싼 혐오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역시 트라우마 회복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권순재(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는 “(악플러는) 다른 사람의 불안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 나만은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이란 방어기제로 움직인다”며 “트라우마는 사회가 아닌 개인의 탓이라고 비난하는 악플러의 본질은 ‘타자화’해서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고립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센터장도 “재난은 냉정하게 말하면 ‘랜덤’”이라면서 “피해자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와중에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오기도 한다. 세월호참사 등 대형재난이 터지면 책임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 센터장은 “유족을 끝까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지방자치단체 직원들, 제주항공, 한국공항공사 직원들”이라며 “이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유족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엔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 개량 사업을 시작할 당시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인재가 발생하면 안타깝게도 책임이 부여됐던 사람들을 자살로 잃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를 지켜본 국민도 마음을 살필 필요가 있다. 최근 국민은 비상계엄사태와 제주항공 참사에 이어 서울서부지법 난동사태까지 독한 일을 연거푸 겪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연대’가 집단 트라우마 회복의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백 교수는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세상이 안전한가?,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서 “회복은 사람과 함께할 때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권 이사도 “최근 공항 등이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하다 보니 국민이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신뢰를 잃고 늘 보던 풍경과 일상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졌다”며 “안전에 대한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데, 참사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도 집단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상대로 마음의 상처나 재난을 얘기하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 피해자의 행동과 감정을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넘겨짚지도 않아야 한다. 참사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을 조심하고 잘못된 정보도 제시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잘 들으면서 공감하고, 당사자가 잘 대처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게 필요하다.
권도경·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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