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립습니다 - 나의 남편 고 김사훈 시몬(1952∼2024) <하>하>
상상도 못 했던 이별 앞에 남편 김사훈 시몬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사를 넣고 하루에 서너 번씩 연도와 기도를 하는 것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사진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남편에게 실없는 말을 해본다.
“자기야, 다시 왔다 가면 안 될까? 잠깐이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 우리 마지막 인사도 못 했잖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듣고 가야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애절하게 중얼거려 본다.
지난 주일 수녀님께서 내게 다가오시더니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라시며 목멘 소리로 말을 꺼내셨다.
“언어의 마술이라 하지만 난 시로 표현된 우리 언어가 그렇게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거에 놀랐어요. 슬픈 시가 아니었는데 너무 슬퍼서 장례미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다 울어 눈물바다가 됐어요. 지금도 난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연극배우와 기획자로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 비하인드스토리가 담겨 있는 시 ‘옛날이야기(G선상의 아리아)’를 남편의 장례 미사 때 유가족 인사를 한 후 남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낭독을 했었다. 목이 메어 못 읽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끝까지 낭독할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남편을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의 연애시절 둘을 결혼시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C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였던 후배의 공이 컸다. 당시 그 친구는 나와 남편이 속해 있던 극단 신협의 워크숍 단원이었는데 연기를 가르쳐 달라는 핑계로 툭하면 동료들을 몰고 나를 앞세워 남편의 집으로 몰려가곤 했었다. 음악감상이 취미였던 남편은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집 안 가득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주었고 내가 좋아하던 G선상의 아리아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한다.
옛날이야기(G선상의 아리아)
사랑하는/나의 아들아, 딸아/엄마가 옛날이야기 하나 들려줄게/옛날 아주 먼 옛날/한 여자가 한 남자를 알게 됐대/그 남자는 여자를 만날 때마다/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놓고/바이올린연주곡을 들려주곤 했대/그 곡은 여자가 좋아하던/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였지/여자는 그 남자가/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로 보였대/어느 날 파가니니는/음악 애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연주를 하고 있었는데/불행하게도 연주 도중/줄 하나가 끊어지고 말았대/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차례로 바이올린 줄이 하나씩 하나씩 끊어지고/가장 낮은음인 G선 그 한 줄만 남게 된 거야/위기에 처한 파가니니가/잠시 연주를 멈추고 가만히 있더니/다시 연주를 하기 시작했대/마지막으로 남은 G선 한 줄로/연주를 해낸 즉흥곡이 G선상의 아리아였지/마지막까지 끊어지지 않은 그 한 줄을 위한/파가니니의 연주곡 G선상의 아리아는/그 여자와 그 남자에게 사랑의 무지개가 되어/아들 낳고 딸을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는구나.
훗날 언젠가는 똑같은 이야기를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있을 테지. 사랑을 추억하며….
아내 이애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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