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요즘 ‘실용주의’가 화두다. 22일 당 대표 회의실엔 ‘회복과 성장, 다시 大한민국’ 문구의 걸개가 새로 설치됐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와 겹친다는 지적이 일자,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쓰던 구호면 어떤가. 제가 쓰자고 했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흑묘백묘론’이다. “이제는 탈이념, 탈진영의 실용주의로 완전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쏟아진 전방위 리스크와 관련해서도 “실용적인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한미동맹’을 언급한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 대리를 만나선 “한미동맹으로 한국이 성장 발전했고, 한미동맹을 더 강화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 82명이 제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 지지 결의안’에도 참여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외교·안보와 통상 전략을 마련해 대응해야”(20일)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으며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될 것”(17일). 지난해 말 이임을 앞둔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를 만나선 “한미동맹은 한미관계의 기본”이라더니 “한미일 간의 협력관계도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가 “감사드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 접견 땐 자신이 “일본에 애정이 매우 깊은 사람”이라며 “적대감을 갖고 살았지만 변호사 시절 일본을 방문했다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정치세력 간의 담합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윤 정부 노선을 견제했지만, “양국 관계의 중요성은 변함없다. 한일, 한미일 협력관계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탄핵소추안에서 한미일 공조를 탄핵 사유로 삼았던 정당의 대표는 사라진 듯하다. 겉만 보면 “중국에 그냥 셰셰하면 되지”라던 기류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율 하락, 트럼프 진영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정치에서 실용주의는 이념이나 가치 지향에 대한 반대말로 통한다. 하지만 모든 대상을 자기 편의대로 수단·도구화하고, 오류를 실용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을 띤다. 윤 정부의 국정 운영 원칙 중 하나도 실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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