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지난 23일 열린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가 무난하게 끝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했다. 당초 오전 9시로 예정됐던 총회는 오후 3시쯤에야 개최됐고,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 25.42%에 대한 의결권은 완벽히 봉쇄됐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MBK 파트너스의 이사회 장악을 저지하는 데 일단 성공했고, 총회에 상정된 안건 대부분이 통과됐다.

고려아연 측의 전략은 ‘상호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었다. 이는 과연 적법했는가? 어차피 소(訴)를 통해 가려질 것이므로 법원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상법은 주주총회 관련 4가지의 소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타 회사가 의결권이 휴지되는 상호주(상법 제369조 제3항)를 가지고 의결권을 행사한 경우는 ‘결의취소의 소’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의결권이 부당하게 제한된 채 결의가 이뤄졌다면 그 경우도 결의취소의 소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불공정한 의사 진행이 있었다면 그것도 결의취소의 소 대상이다.

현재 고려아연㈜은 ㈜영풍을 지주회사로 하는 기업집단 ‘영풍그룹’의 중간지주회사에 해당하는 핵심 계열회사이고, 영풍그룹의 동일인(총수)은 장형진 고문이다. 이것만 보면 그룹 계열회사인 고려아연㈜이 지주회사 ㈜영풍과 다투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그 성장 과정을 봐야 이해가 된다.

영풍그룹은 1949년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합명회사 ‘영풍기업사’로부터 출발했다. 1970년 영풍상사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석포제련소를 설립하면서 비철금속 제련업에 진출했다. 1974년 8월엔 최기호 창업주 등 최씨 가문을 중심으로 경남 울주군 온산읍에 고려아연주식회사를 설립, 연산 5만t 규모의 온산 아연제련소를 완공해 국내 아연 시장 공급을 주도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신 주식은 상대 일가도 동등하게 보유해 왔다. 여기서 장씨 일가의 계열통합 의지와 최씨 일가가 계열분리 및 독립경영 시도가 이해된다. 특히, 고려아연 측은 경영권 방어에 사력(死力)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는 한국 기업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강박증(强迫症)’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선대의 사업을 물려받은 자가 그 사업을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주지 못하면 조상에게 큰 죄를 짓는다’고 믿는 것 말이다.

이 사건엔 사모펀드 MBK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는 않다. 정부는 사모펀드를 키우고 싶어 한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해외 해지펀드들의 공격에 취약해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규모 국내 사모펀드를 키워 국제 사모펀드의 한국 기업 공격에 대비하면서 한국 기업들을 살리려는 금융 당국의 계산도 한몫했다. 사모펀드의 성공적인 투자 사례도 많다. VIG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했고, 한앤컴퍼니는 에이치라인해운, SK해운을 인수했다. 피인수 기업의 운명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평가는 사례마다 다르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경우 근로자에게 가해지는 근로조건 악화와 해고에 대한 불안, 국가 기간산업 보호 문제, 급격한 주가 변동 등에 대한 우려 등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좋지 않은 사례들이 쌓이면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

임시주총에선 고려아연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에 사망한 미국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는 1997년에 쓴 자전적 소설 ‘빵 굽는 타자기’에서 말했다. ‘돈은 언제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결국, 돈이 말하게 될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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