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전 다룬 작품들의 경고 양극화에 참혹한 디스토피아 12·3 계엄 후 정치 내전 위험
부족주의 음모론 유튜브 결합 분열 시대 작동하는 정치개혁 개인은 다원적 정체성 살펴야
2034년 미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뉜다. 민주주의를 꽃피우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강국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미국이 극단적 대립과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공화당 중심의 공화국 연맹과 민주당 중심의 연방공화국으로 쪼개진다. 분열의 시작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직접적 도화선은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워싱턴 의회 난입 사태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더글러스 케네디가 2023년 출간한 가상소설 ‘원더풀랜드(원제 Flyover)’의 설정이다. 소설은 그 12년 후인 2046년 공화국 연맹도 연방공화국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첩보전을 담았다.
케네디만의 상상이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상처인 1·6사태 후 미국에선 ‘내전 스토리’가 장르가 될 만큼 쏟아졌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도 그중 하나다. 영화에선 불법적 3연임을 강행한 권위적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을 해체하며 민주·사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반대 시민을 무력 진압하자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중심의 반군 ‘서부군’이 워싱턴DC 백악관으로 진격한다. 감독은 극단적 분열을 단순히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만 보지 않도록 공화당과 민주당 텃밭인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함께 반군을 결성하도록 했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극단적 분열의 결과는 참혹하고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1·6사태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오버랩 된다. 12·3 계엄 이후 정치적 분열이 심리적 내란 상태라는 진단, 앞으로 유사 내전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들 가상 드라마의 경고가 섬뜩한 이유다.
때마침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F 월터는 이번 주 번역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그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저자는 내전 위험은 최빈국이나 불평등한 나라가 아니라 완전한 민주정과 전제정 사이 ‘아노크라시(anocracy)’에서 높아진다고 했다. 특히, 선출된 권위적 권력자가 민주 국가를 전제정치로 떨어뜨릴 때를 주목한다. 이 권력자는 입법·사법·행정의 견제를 무력화하는 데 헌법의 약점을 파고들어 행정명령, 의회 표결 같은 합법적 방법을 쓰기에 막기가 어렵다. 여기에 기존 권력에서 추락해 소외감을 느끼는 ‘격하’ 집단, 구체적 정책보다 자신과 같은 ‘부족’인지가 지지의 기준이 되는 정체성 정치, 정당의 파벌주의, 소셜미디어, 가짜뉴스, 음모론 등이 가세해 극단적 분열이 벌어진다. 그는 미국도 1·6사태 직후 아노크라시에 빠졌었다고 했다.
‘미국의 내전 시나리오’가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 분석은 한국 정치 혼란의 많은 부분을 비춘다. 서부지법 난동의 중심이 된 2030 극우 청년들도 설명한다. 이들은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격하 그룹으로 반페미니즘 등의 정체성으로 움직인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고 극우 유튜브에 흔들렸다. 윤 대통령은 “유튜브를 통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훈방을 약속하며 부추겼다. 극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 정치는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좌파 유튜브에 출렁인 지 오래다. 이들은 진실 여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후원금이 늘어난다. 2030 청년은 블루오션이다. 이처럼 정치 양극화가 정치·미디어 변화에 자극을 좇는 인간 본능까지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다.
이에 미국 정치 평론가 에즈라 클라인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에서 이제는 이전의 ‘탈양극화한 민주정치’가 오히려 예외이고 ‘분열’이 ‘규범’인 시대라며 양극화 속에서 기능하도록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민주주의 강화, 소셜미디어 제한, 시민교육 등이 필요하다. 최근 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78.9%, 63.5%가 소선거구제 등 선거제 개편, 5년 단임 대통령제 개헌 등을 원했다. 클라인은 개개인에게 ‘정체성의 적극적 선택’을 조언했다. 사람은 정체성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지만,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니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기억하라. 정체성은 여러 가지다. 공화당원, 민주당원은 정체성이다. 하지만 공정한 사람, 호기심 많은 사람 등도 중요하다. 근육과 신경처럼 많이 사용하는 정체성은 강해진다. 어떤 정체성을 활성화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