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평론가의 서재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의 ‘낭비 없는 밤들’은 “다양한 시기와 주제의 작품들을 통해 실비아 플라스의 작가적 재능과 발전”을 엿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촉망받는 시인, 작가였지만 실비아 플라스의 삶은 순탄치 않았고, 끝내 서른이던 1963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77년 남편이었던 영국 시인 테드 휴스가 작가의 미공개작들을 포함한 단편과 산문, 일기 등을 묶어 ‘조니 패닉과 꿈의 성경’을 출간했고, ‘낭비 없는 밤들’은 그중 산문 5편과 17편의 단편을 선별해 역연대순으로 엮은 책이다.

생전 마지막으로 쓴 산문 중 하나인 ‘아메리카! 아메리카!’에서 실비아 플라스는 가난했지만 빛나는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미국 교육 제도의 모순을 지적한다. 실비아 플라스와 동시대를 산 미국인들에게 “무료로 주어졌던” 공립학교 교육은 이내 “대학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위험할 정도로 똑똑”했던 실비아 플라스의 대학 시절은 아름답지 못했다. 학교나 교내 조직에서 신입생을 지도하는 여자 상급생인 ‘빅 시스터’는 첫 주에 화장도, 세수도, 빗질도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에 빅 시스터의 집을 찾아가 침대 정리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교육 본래의 정신은 잇지 못하고 허울뿐인 명목만을 강요하는 일련의 교육 과정을 실비아는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작은 원 안에서 웃고 있었다”라고 묘사한다. “누구든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 시대였지만, “아무도 되지 못했다”고밖에 말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여러 단편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삶을 묘파한다. 단편 ‘모든 죽은 소중한 이들에게’에 등장하는 넬리 미한과 클리퍼드 부부, 넬리의 사촌 허버트, 차 한잔하러 들른 도라 서트클리프는 석탄불 앞에 둘러앉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시작으로, 곁을 떠난 지인들의 이야기를 때론 침울한 마음으로, 때론 기쁜 마음으로 토해낸다. 어떤 죽음은 주변의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단편 ‘프레스콧 씨가 죽던 날’은 그 상황을 서걱거리는 등장 인물 대화 속에서 포착해낸다. 가난한 삶, 그것에서 촉발된 오해, 그리고 오해가 낳은 어린 시절의 차별을 풀어낸 ‘더 섀도’ ‘슈퍼맨 그리고 폴라 브라운의 새로운 방한복’ 같은 단편들은 읽는 내내 짠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산문으로 시작해 고단하면서도 찬란했던 어린 시절을 그려낸 단편들까지, 짧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실비아 플라스의 삶의 한 부분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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