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실패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12월 20일 실패연구소가 하는 일을 만화 형식으로 소개한 안내판에 누워 인생에서 ‘실패’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조성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실패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12월 20일 실패연구소가 하는 일을 만화 형식으로 소개한 안내판에 누워 인생에서 ‘실패’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M 인터뷰 -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

매년 11월 실패 관련 행사 진행
망한 과제 자랑대회로 경험 공유
실패사진 전시·에세이 공모전도

실패 극복후엔 ‘더 나은 사람’ 돼
좌절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 중요
대학 넘어 국민 위한 연구소 되길


대전=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

“실패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훈장을 다는 것입니다!”

조성호(51)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실패연구소 소장은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은 실패, 실패, 실패, 실패를 거듭하다가 약간의 성공을 한 것”이라며 “실패가 없이는 성공도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실패를 하고, 실패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그러나 실패한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전자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현재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이면서, 실패연구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우리나라 이과 연구·개발(R&D)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전 유성구 대학로에 있는 카이스트 N5 건물 2233-1호(실패연구소)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인터뷰 장소인 건물 이름(N5)과 연구실 번호(2233-1호)부터 상당히 이과스러웠다. 대개의 경우 실패는 심리학 등 인문·사회과학에서 주로 다룬다. 그런 실패를 ‘뼛속까지 이과 학교’라는 평가를 받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호기심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공과대학에서 실패연구소를 운영하는 게 낯설다.

“그동안 카이스트는 최선을 다한 결과,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최고의 성공은 과감한 도전을 할 때만 이룰 수 있고, 과감한 도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과감한 도전 정신 함양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언제 소장에 취임했나.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2021년 6월 설립됐는데, 2023년 8월 2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본업인 전산학부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겸직으로 실패연구소장직을 병행하고 있다.”

―실패연구소는 어떤 일을 해왔나.

“취임 이후 매년 11월이면 실패와 관련된 행사를 진행해왔다. 2023년 11월에는 ‘실패 주간’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했는데, 지난해 11월 행사 명칭을 ‘실패학회’로 바꿨다. 이름을 실패학회로 바꾼 이유는 구성원 모두 같이 고민하고 소통하자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향후 목표는 카이스트 실패학회를 ‘대한민국 실패학회’로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카이스트 실패학회의 근본적인 목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에 진행하던 전문가 강연이나 세미나보다는 내가 직접 실패를 말하고, 소통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2023년에는 개인 발표 형식으로 ‘망한 과제 자랑 대회’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망한 과제 자랑 대회를 부스 박람회 형태로 진행했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실패와 관련된 아이템,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부스를 만들고 자신의 실패 사례를 발표하는 것이다. △치명상(공감과 동정심을 유발한 팀) △상상 그 이상(가장 흥미롭게 실패를 풀어낸 팀) △화려한 비상(실패했지만 성공을 응원하고 싶은 팀) 등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상도 만들었다.”



― 다른 행사로는 어떤 것이 있었나.

“지난해 실패학회 행사 기간인 11월 8일부터 20일까지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1층 로비에서 ‘거절’을 주제로 ‘We regret to inform you(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라는 제목의 상설 전시회를 열었다.(‘We regret to inform you’는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대학 입학, 취업, 공모전 등에 지원했다가 받게 되는 탈락 서한에 전형적으로 포함되는 문구다. 영문 편지에서 이 문구가 발견되면 지원에서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상설 전시회에서는 ‘실패 포토 보이스: 거절 수거함’ 캠페인을 통해 수집한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반려, 불합격 등의 인증 사진을 콜라주 형태의 작품으로 전시했다.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인생을 살면서 실패한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 옆에 실패와 관련된 메모를 적도록 한 것이다. 실패 사진 전시회도 자신의 실패를 사진으로 표현하도록 해서 궁극적으로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에세이 공모전에서 선정된 실패 및 극복 이야기도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에세이 공모전에는 어떤 작품이 출품됐나.

“매우 다양한 내용의 실패 사례가 출품됐다. 학업에 대한 실패의 경험을 공유한 것도 있고, 영재교육기관에 8번 떨어지고 나서 ‘영재가 아니라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사례도 있었다. 주식투자 실패를 쓴 것도 있었고, 여전히 이성애 중심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용기 있게 ‘커밍아웃’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수필처럼, 어떤 사람은 소설처럼 다양한 문체와 방식으로 자신의 실패를 드러내고, 실패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고 노력해온 과정을 표현해냈다.”

―개인적으로도 실패한 경험이 있나.

“사람은 이력서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대를 거쳐 미국 MIT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력서만 보면 굉장히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력서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결과물만 본 것이고, 실제 그 과정을 곰곰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학교수는 한 편으로는 연구를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실패, 실패, 실패, 실패를 거듭한 뒤 약간의 성공을 거두면 그것을 학술지 등에 논문 형태로 발표한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만 읽는 독자들은 그 논문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보다는 결실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실패란 당연한 일이고, 실패한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했기 때문에 성공이란 결과물이 남게 되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패를 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가끔 보는데,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예컨대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일은 안 하고 연애만 하는 데도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을 위한 과정이 삶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데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내면을 곰곰 뜯어보면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어쩌면 성공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다. 실패 후에도 꾸준히 노력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나뉘는 분수령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한 사람은 실패 이전의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성공은 실패 후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은 결과보다 성공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인생이라는 게 실패하거나, 성공해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또 새로 해야 할 일이 나타나는 것 같다. 실패하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곧 새로운 과제가 나타나서 다시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실패를 하는 것’, 즉 실패를 하더라도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회복 탄력성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학생을 포함한 카이스트 구성원이 자신의 실패와 극복 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북돋우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펼쳐왔다.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대학 부설 실패연구소로서 앞으로도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기여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국민 모두 실패를 극복하는 회복 탄력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연구소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세계적 신경생물학자 니라오 샤가 ‘실패연구소’ 문 두드린 까닭은…

카이스트서 팻말보고 들어와
“뭘 연구하나” 꼬치꼬치 질문
X에 “특별한 곳” 글도 올려


‘똑똑.’

조성호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실패연구소 소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3년 가을, 누군가 실패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처음 보는 외국인이 서 있었다.

카이스트 N5 건물 2233-1호, 실패연구소 출입문에는 한글로는 ‘실패연구소’, 영어로는 ‘Center for Ambitious Failure’라고 적혀 있다. 지나가던 외국인 연구자가 연구소 출입문에 적힌 ‘Center for Ambitious Failure’라는 문구를 보고 문을 두드린 것이다.

영문 문구를 직역하면 ‘성공을 갈망하는 실패(Ambitious Failure) 센터’쯤 되는 의미니까 외국인 연구자가 지나가다가 ‘이곳은 뭘 하는 곳일까’ 하고 호기심을 느낀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카이스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대인데, 이런 곳에서 우연히 실패연구소를 발견했으니 무엇을 연구하는 곳인지 궁금증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실패연구소 문을 두드린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생물학자인 니라오 샤(Nirao Shah) 미 스탠퍼드대 교수였다. 샤 교수는 학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카이스트를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실패연구소 앞을 지나게 된 것이다. 샤 교수는 미 스탠퍼드대에서 ‘샤 연구소(The Laboratory of Nirao Shah)’를 이끌고 있으며, 동물과 인간의 뇌를 통해 수컷(남성)과 암컷(여성)이 보이는 행동의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샤 교수는 조 소장을 만나자마자 “여기는 도대체 뭘 연구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꼬치꼬치 던졌다고 한다. 조 소장의 설명을 한참 들은 샤 교수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X에 글(사진)을 올렸다. 그 글에는 “카이스트에서 실패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실패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하는) 이런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에게 채택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한국 여행에서 여러 가지 배운 점이 있지만, 이것은 특별하다(special)”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방문 사실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조 소장은 “외국인 연구자가 실패연구소에 대해 궁금해하길래 설명해줬더니 미국으로 돌아간 뒤 X에 실패연구소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웃었다.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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