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정부 관료나 공공기관 직원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은 서울을 왕복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리는 지방 소도시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점심·저녁 식사 약속이나 한 두 시간의 회의를 위해 서울행 KTX 또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먼 길을 와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면 대답이 이런 경우가 많다.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 삽니다. 오늘은 집으로 퇴근하고 내일도 서울 회의 일정이 있어요.” 지방 혁신도시에 터전을 잡았더라도 전·월세 거주가 흔하다. “애가 중학교 갈 때쯤에는 와야 할 것 같아서 집은 서울에 사놓고 전세를 주고 있어요.” 공공기관 입사 5년 차인 한 대리는 의지를 다졌다. “서울은 너무 비싸니 일단 경기 남부에 내 집 마련을 하려고요. 회사 근처에 집을 사면 결혼 상대 찾기가 너무 어려워질 거 같아요.”




지난 20년 동안 추진된 국가 균형 발전 정책에 따라 많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세종시와 전국 10곳 혁신도시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잡초만 무성했던 지방의 농지엔 휘황찬란한 공공기관 건물들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일부 지역의 상전벽해가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는지 의문이다. 지방 한 혁신도시의 대장 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3억6500만 원에 매매됐는데 전세 시세는 무려 3억2000만 원에 달한다. 거주 수요는 있어도 전·월세로 집을 구하고 매매는 기피 하니 전세가율이 80%를 웃도는 수준으로 뛴 것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집값 상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12억8360만 원인데 반해 집값 하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1억1648만 원이었다. 서울 아파트 1채면 지방 아파트 11채를 살 수 있다.

1800년부터 18년간 한양을 떠나 유배 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울을 떠나지 말라(汝勿去京·어물거경)”고 당부한 일화는 2025년에도 곱씹어볼 만하다. 아들만은 서울에 살면서 중앙 정계와 학문적 교류에서 멀어지지 않길 바란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혼란한 시국 속에서 어떤 정치인들은 지방 분권을 더 가열 차게 추진해 양극화를 타파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어디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가족들은 실제 어느 곳에서 거주하면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매매가 3억 원대 혁신도시 아파트에서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살면서 자녀들은 서울·수도권 자가 근처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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