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는 교통박물관이 있다. 폐쇄된 지하철역을 개조한 것인데, 뉴욕의 과거 지하철 차량들이 모여 있다. 100여 년 전에 뉴욕 지하를 달리던 기차에서부터 1980년대에 개발된 모델까지 거의 10년 단위로 지하철 혁신이 있었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 이후에는 기차의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하철 운영 시스템도 그때 이후로 진보했다고 보기가 어렵다. 자주 발생하는 정전 사태로 전철 운행이 지연되는 것도 다반사이다. 근 30년 동안 기반시설(인프라) 투자에 세금을 쓸 여력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지난 연말에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1993년 목포공항(당시에는 군공항 겸용) 비행기 사고로 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건설된 전남 무안공항에서 일어났다. 무안공항은 제대로 된 민간공항을 짓자는 논의 끝에 탄생한 곳이었다. 1994년 서울 성수대교가 끊어지는 사고를 겪은 지 30년 만이던 재작년에는 경기 분당의 정자교가 주저앉아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인프라에 대한 경고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대형 인프라를 건설만 했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무안공항은 매년 수백억 원에 이르는 적자 때문에 관리 인력이나 시설 정비가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었다. 김포·제주·김해를 제외한 대개의 국내 공항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울릉공항 등 8개의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물리적 인프라뿐인가? 지난해 12월 초 한밤중에 홍두깨 같았던 비상계엄은 헌정 질서조차 얼마나 도전받기 쉬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우리는 숱하게 개헌 논의만 했고 고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의결사항이 아니라는 조항도 그렇다. 전시에 준하는 상황만 상정했던 터라 이번 경우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계엄 조항은 소소한(?)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1차 베이비부머들이 대학생일 때 만들었던 1987년 헌법은 이제 MZ세대들에 맞게 고쳐져야 할 것 같다. 1인당 소득 3000달러 시절에 만들었던 헌법이 3만 달러 때 태어난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 때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원집정제,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을 두지만, 국민의 기본권 개선이 우선이다. 미래세대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주거와 환경 등 기본권 관련 조항부터 우선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발생한 이 두 건의 참사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인프라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항공 참사의 주요 원인은 관계 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새 떼와 충돌로 인한 엔진 고장, 과도한 운행과 정비 불량으로 인한 랜딩기어 등 장비 문제, 필요 이상으로 조성된 콘크리트 둔덕 등으로 좁혀지는 것 같다. 어느 경우든 인프라 관리에 허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고로 기록될 듯하다. 다른 한 건, 비상계엄 사태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가 다뤄지겠지만, 한밤중의 해프닝으로만 보기에는 위험한 시도가 너무 많았다. 헌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대들보라면, 공항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토대이다. 두 건의 사고를 얼마나 빨리 정리하고 정상을 회복하느냐는 우리의 회복 능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 물적·비물적 인프라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과 리셋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