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미국에 감사하고 동맹도 강조
변화 바람직하나 진정성 우려
조기 대선 겨냥한 전술 가능성

‘美 점령군’ ‘日 적성국’ 발언
한미일 국제관계 인식 낮거나
뿌리 깊은 친중·친북 자백인 셈


설 연휴 직전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흑묘백묘론을 언급하며 실용주의로의 면모 일신을 시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뒤이은 탄핵소추에 따른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비해 중도 확장을 노린 것이지만, 그 자체만으론 나쁘다기보단 바람직하다. 기본소득으로 대표되는 현금 살포형 분배 중심에서 기업과 성장 중심으로 노선 변화는 올바르다.

다만 전 국민 25만 원 지급, 주52시간제, 노란봉투법, 양곡법 등 그간의 반시장·반기업·포퓰리즘 행적에 대한 반성과 노선 전환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이 없어 또 금세 달라질 수 있다는 의심도 받는다. 그런 무신불립이 최대 약점인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같은 처신이 자초했다. 예수교인을 탄압하던 열렬한 유대교도인 사울이 부활한 예수를 영접해 ‘사도 바울’로 회심한 만큼은 아니어도 노선 전환엔 처절한 반성과 이유가 있어야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진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건 외교·안보관 돌변이다. 이 대표는 12·3 비상계엄 이후 미국에 감사를 표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부쩍 입에 올리고 있는데, 180도 변신이라 할 만하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이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으며 한미동맹은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만나선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한미일 간의 협력관계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고, 나흘 뒤 일본대사에게도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이 대표의 태세 전환은 그간 보여온 과도한 친중·친북 노선에 대한 미국 등의 의심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면 차기 권력에 가장 근접한 이 대표로선 이런 당연한 한미동맹 존중 발언이 특이하게 보일 정도로 이상 행보를 해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대표는 미군을 ‘점령군’으로, 일본을 우리의 ‘적성국’으로 단정하며 북한보다 더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많이 해왔다. 경기지사이던 2021년 7월 경북 안동 이육사기념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언급하며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고 했고, 다음 해 10월엔 한미일 동해 연합훈련에 대해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국제정치적, 군사적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자백과 다름없다. 한미동맹이 굳건한 조건에서 일본이 어떻게 한국에 쳐들어온다는 망상을 할 수 있나. 한미동맹이 아니라도 한국 전력이 일본에 밀리지도 않는다. 초등생만도 못한 현실 인식이거나, 뻔히 알면서도 벌이는 허튼 선동이다. 이 대표는 2023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때 반일 선동에 앞장서며 “함께 쓰는 우물에 독극물을 퍼넣는다”고 난리를 쳤는데, 전남 목포 규탄집회 참석 날 횟집에서 의원들과 회식하고 방명록도 남겼다. 동해 독극물은 자신도 믿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 대표의 식견·도덕성 부족이나 사법 리스크만큼 심각한 게 외교·안보 리스크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서 한일 관계 업그레이드를 친일로 매도한 게 상징적이다. 1차 탄핵소추안에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라는 대목을 넣었다가 2차 탄핵안에선 뺐는데, 늦었다. 정치사상적 본색을 다 들킨 뒤였다. 국민의힘 의원 8명의 동참이 있어야 통과되는 다급한 상황에서 외교 노선까지 탄핵 사유로 굳이 넣자고 이 대표가 고집했다고 한다. 국민 일반과 외교·안보관이 완전히 동떨어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친중·친북주의가 골수에 박혔다는 증거다. 이 대표가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 머리를 조아리거나 “중국에 셰셰”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있나”고 한 것과 맥락이 같다. 우리 첨단 산업 기술을 빼내는 중국의 산업 스파이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간첩죄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개정안 처리를 계속 미적대는 것도 의심을 키운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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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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