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각종 문제 제기가 이어질 뿐 아니라, 심지어 탄핵결정에 불복할 가능성까지 우려된다. 진영 갈등이 극단화한 상황에서 탄핵결정까지 불복할 경우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신뢰가 많이 약해졌다는 데 있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다.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작게는 사법부의 존립 기초가 심각하게 훼손돼 사법개혁이 요청되며, 크게는 법치가 붕괴돼 아노미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재판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필수적 전제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이다. 중립적이지 않고 편향적인 재판이 공정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러한 중립성을 위해 독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 아닌 국민을 위해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사법부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하더라도 국민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신뢰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 사법 비리 등과 관련해 법원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할 때, 사법부의 동의 없는 사법개혁이 강행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탄핵제도는 미국과 같은 정치적 탄핵이 아닌 사법적 탄핵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고, 상대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에 부응해 헌재는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설득력 있는 결정으로 국민을 납득시키고, 탄핵사태로 인한 혼란을 종식시켰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기각은 불법의 중대성이라는 기준으로 국민을 납득시켰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인용은 재판관 전원일치 ‘8 대 0’이라는 결론으로 법리적 판단임을 보여줬다.
그런데 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결정에서 나타난 ‘4 대 4’ 결정은 헌재의 정치성에 대한 우려를 자극한다. 탄핵에 대한 인용의견과 기각의견이 나뉠 수는 있다. 그러나 인용의견 또는 기각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임명 배경 및 정치적 성향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은 그러한 판단이 순수한 법리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결정에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근거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국회 소추위원단의 내란죄 철회와 관련한 헌재의 권유 논란, 문형배 재판관의 사회관계망(SNS) 논란, 이미선 재판관의 동생과 남편에 대한 논란, 정계선 재판관의 남편에 대한 논란 등은 헌법재판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결과가 이 방통위원장의 경우처럼 나온다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헌법재판소법 제40조의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탄핵심판에 형사소송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헌재의 거듭된 입장이다. 그로 인해 헌재의 결론과 법원의 형사소송 결론이 달라져도 괜찮을까?
헌재가 국가의 혼란 상황을 속히 해소하기 위해 신속한 재판을 앞세우는 것은 일응 타당하다. 그러나 신속한 결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공정한 재판이다. 국민이 납득하는 공정한 재판만이 갈등과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