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 묵묵히 돕는 남자비서
조선 최고의 로맨티시스트 남편
수녀 구마의식 조력자 신부까지
츤데레·나쁜 남자 끌렸던 여심
‘헌신하는 남성’으로 눈길 돌려
한동안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주요 성격은 ‘츤데레’(つんでれ)였다. 겉으로는 툴툴대고 차갑지만 은근히 여주인공을 챙기는 남주인공의 모습에 여심이 흔들렸다. 요즘은 다르다. 대놓고 챙긴다. 꿈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여주인공을 곁에서 열과 성을 다해 지원하는 ‘내조남’이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됐다.
12%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는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타이틀롤인 은호(이준혁)는 남성 비서다. 헤드헌팅 회사를 이끄는 여성 CEO 지윤(한지민)을 곁에서 밀착 마크한다. ‘CEO=남성’ ‘비서=여성’이라는 틀을 깬 이 작품에서 은호는 섬세한 손길로 ‘일만’ 잘하는 지윤을 챙긴다. 대기업 재직 중 육아휴직을 썼다가 누명을 쓰고 퇴직당한 설정에서 알 수 있듯 은호는 집에서는 초등학생 딸도 살뜰히 돌본다. 덜렁대던 지윤이 든든하게 곁을 지키는 비서에게 마음을 뺏기며 마음을 고백하게 되는 과정은 여성 시청자들이 은호를 연기한 이준혁의 매력에 빠지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된다.
13.6%로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첫 주연을 맡은 배우 임지연과 더불어 또 한 명의 스타를 배출했다. 극 중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의 직업과 지위까지 내려놓은 천승휘 역을 맡은 배우 추영우다. 천승휘는 당대 최고의 예인이지만 노비 출신 양반가 부인이자 외지부(변호사)가 되는 옥태영(임지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의 남편이 되고 목숨까지 거는 인물이다. “하루라도 네 남편으로 살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렵지가 않다”고 옥태영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그에게는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또한 옥태영의 손을 꼭 잡은 채 “난 최고야, 난 대단해”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는 그의 마음가짐은 옥태영을 비롯해 주변인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불어넣는다.
4일 문화일보와 만난 추영우는 “천승휘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기의 일, 이름, 가족도 버렸고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지만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제 사랑관도 이와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흔치 않은 남자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천승휘를 더 사랑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설 연휴 12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는 바오로 신부(이진욱)가 눈에 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로 의학과 과학을 믿는 바오로는 당초 유니아(송혜교)·미카엘라(전여빈) 수녀들의 구마 의식을 부정하며 대립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바오로는 두 사람의 든든한 조력자로 나서고 제자인 미카엘라가 바오로의 의학 지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통상적인 신부와 수녀 관계를 전복시키는 것은 ‘검은 수녀들’의 차별화된 포인트고, 바오로 신부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작품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같은 설정은 판타지에 가깝다. 홀로 딸을 키우며 비서로 일하는 이혼남과 고용주가 사랑에 빠진다는 건 현실성이 높지 않다. 또한 철저한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명문가 아들이 한 여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내러티브에서 역사 고증을 논할 순 없다. 하지만 신분과 지위, 고정된 성 역할을 허무는 캐릭터에 대중은 오히려 열광하는 모양새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 서사로 내세우는 드라마가 주목받는 시대상과 결부된다. 아울러 여성들이 드라마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이라는 점과 맞물려 해석할 수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육아나 가사에 참여하는 남성들이 하나의 판타지로 등장하는 작품이 늘고 있다”면서 “이것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면서 돈과 성공보다는 자아 성취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즉 남성이 뭔가를 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위로해주는 걸 더 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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