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보건사회연구원 사회갈등 분석

71% “좌·우 정치성향 다르면
시민·사회단체 활동 같이못해”

유튜브 등 확증편향·혐오 확산
설 명절에 부모-자식 정치설전
전문가 “내 편 아니면 적 인식”




정모(51) 씨 집안은 아버지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주말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매일 보수 유튜버 영상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하면서 정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정 씨는 “건강도 안 좋으니 집회에 나가지 말고 유튜브도 보지 말라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싸울 것 같아 설 명절도 따로 보냈다”고 말했다. A(28) 씨도 지난 명절에 고향을 방문했다가 어머니의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다. 요즘 뉴스에는 대통령의 억울함에 대해 한 줄도 나오지 않아 유튜브만 본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A 씨가 확인한 어머니의 유튜브 구독 목록에는 보수 유튜브 채널로 가득했다. 그는 “구독 취소를 하려고 하자 어머니가 ‘너희들이 진실을 외면하니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이라며 되레 역정을 내는 바람에 연휴 내내 어색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 유형으로 진보·보수 갈등이 꼽힌 가운데 정치 갈등은 정치권을 넘어 집안과 술자리, 연애 등 일상 영역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보사연의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8.20%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했다. 33.0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나 지인과 술자리에 같이할 의향이 없다”고 했다. 실제 프리랜서 정모(28) 씨는 “최근 술자리에서 한 친구로부터 ‘너 2찍이(국민의힘 지지자)잖아. 계엄 동조자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며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는데, 결국 말다툼으로 번져 일찍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 발달로 조회 수가 곧 수익으로 전환되면서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 위주로 여론이 형성된 탓”이라며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앞으로도 진보·보수 갈등이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정치 갈등으로 인한 사회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87.66%는 ‘10년 후 우리 사회에서 심각해질 사회갈등 유형’으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꼽았다. 향후 한국 사회의 사회갈등 전망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65.09%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 28.25%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답하는 등 93.34%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6.66%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사회갈등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고 투명한 법 집행(22.31%)’과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21.81%)’, ‘촘촘한 사회안전망 강화(15.44%)’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회갈등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는 주요 주체에 대한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해결 주체 1위로 꼽힌 행정부(대통령실, 중앙정부, 지방 자치정부 등)의 신뢰도는 41.9%로 절반에 못 미쳤고, 2위인 입법부(국회)는 22.6%로 아주 낮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갈등 해결 주체는 국회와 정당, 즉 정치일 수밖에 없다”며 “상대를 악마화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문화에서 당파를 넘어 같이 해결하고 타협하는 정치 문화로 변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노지운·이재희·조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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