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트럼프 군사작전식 관세 부과
미국 주도 국제질서 붕괴되면
불량국 판치는 정글 시대 올 것

美 국익 우선은 동맹 방기 위험
中 대만 침공, 北 도발 방관 우려
국가 위기 속 리더십 표류 심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보름 만에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21세기는 이제 트럼프 2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듯하다. 어설프게 시작되어 2번의 탄핵 파동 속에 대파국으로 끝났던 1기(2017∼2021) 때와 달리, 트럼프 2기는 치밀한 군사작전처럼 전 세계를 향해 일방주의 폭탄을 던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구축해온 동맹 기반 국제 공조 정책을 잇달아 없애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기존 질서가 완전히 붕괴됐다’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파리기후협약 탈퇴,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을 강행한 데 이어 중국과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패권 위협국인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는 예상됐던 일이지만, 캐나다·멕시코를 첫 타깃으로 삼은 것은 충격적이다. 펜타닐 문제 등을 내세웠으나 캐나다는 주요 7개국(G7), 멕시코는 주요 20개국(G20) 멤버로, 미국과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을 맺은 나라다. 비록 막판에 한 달 유예로 물러섰지만, FTA 체결국인 한국에도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여러 국제 협정을 하루아침에 폐기한 것은 유일 슈퍼 파워로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주도하며 규범 파괴 불량국을 제재해온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적 행위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렇게 되면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유엔과 수많은 국제기구를 통해 관철해온 국제 규범은 무너질 것이고, 국제질서도 깨지게 된다. 미국이 관리 역할을 포기할 때 세계는 힘센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고 침공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로 변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사령탑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전후 80년간 이어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더는 쓸모없다(obsolete)”고 했다. “미국 최우선 외교를 하겠다”고도 했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며 때때로 자국 이익보다 자유 진영의 대의를 우선했던 리더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외교정책의 기준은 미국을 안전하게 하는가, 강하게 하는가, 번영으로 이끄는가가 될 것”이라면서 충돌 회피 입장을 밝혔다. 이 논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파나마와 그린란드 합병도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 나토(NATO) 등이 재검토 대상이 된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연합훈련이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미·북 협상도 북핵은 용인하며 미국 본토 위협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는 수준에서 끝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슬이 대단해도 의회의 견제가 있는 한 현재의 국제질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트럼프 2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국제적 아노미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틈을 비집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과신한 북한 김정은이 대남 무력시위를 본격화할 수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의 외교정책 기준대로 미국이 관여를 회피할 경우 트럼프 2기 중 동아시아와 한반도는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된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지닌 민주주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덕분이다. 80년 전 미군은 해방군으로 왔고,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국력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제 그 시대가 저물면서 한미동맹도 트럼프적 관점에서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동맹 재조정을 피할 수 없다면 핵능력을 포함해 안보·통상 큰 그림 속에서 패키지 딜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겐 미국에 긴요한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조선·원전이 있다. 트럼프 2기 성공을 위해선 한국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스라엘에 이어 일본 총리가 곧 워싱턴으로 향하는데 한국은 손을 놓은 상태다.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정부·여당은 상황 관리에 급급하고, 야당은 조기 대선 몰이에 빠져 있다. 트럼프 정글 시대를 국가 리더십 실종 상태로 맞게 된 현실이 뼈아프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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