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인들은/ 너무 열심히 시를 쓴다/ 조금만 덜 열심하면/ 아마존 나무의 생존 주기를/ 연장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소리 해대던 나까지도/ 시집 한번 내겠다고/ A4 용지에 잡성을 인쇄하고 있으니’
- 진수미 ‘여기, 털피지의 기적’(시집 ‘고양이가 키보드를 밟고 지나간 뒤’)
마침내 새해가 되었다. ‘마침내’라는 부사가 적절한가, 생각해본다. 역시 잘 어울린다. 새해는 ‘마침내’ 당도하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했던 지난해와 단호히 헤어지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새해는 거듭되고 눈은 또 저리 날리는 모양이다.
하얗게 변해가는 창밖을 보면서 새해 세웠던 목표를 되새겨본다. 올해는 빚을 갚아 나가리라 다짐했다. 서점을 운영하느라, 집을 얻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부채. 그런 것쯤은 녹록진 않아도 정해진 대로 갚아가면 될 일이다. 시급한 건, 늘어만 가는 마음의 빚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담은 커지고 외면하기 더더욱 어려워지는 게 마음의 빚이 아닌가. 나의 일터인 서점을 찾는 손님들은 나의 빛이자 빚이다. 온라인으로 쉽게 받아볼 수 있는 책을 사기 위해 굳이 찾아오는 이들이니까. 고맙다. 그만큼 미안하다. 이 모든 일이 당연한 게 아니라 마음의 빚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눈으로 덮여가는 저 자연은 어떤가. 빠르고 간편하게 살기 위한 나의 선택 대부분이 모두 빚이다. 많은 것이 부지불식간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대한 이 죄책감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이제야,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청구서에 감동하고 괴로워할 때가 아니다 하는 게 요즘 나의 생각이다. 고맙고 미안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올 한 해를 잘 꾸려가도록 만들어줄 동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멈출 줄 모르는 눈에 빼앗긴 망중한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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