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겨냥한 카드 안 꺼냈지만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대비해야 국가 리더십과 여야 협력 절실
미국 워싱턴은 지난 2주 연속 주말 관세 소동에 시끄러웠다. 추방된 불법 이민자들을 태운 군용기 진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콜롬비아에, 마약과 불법 이민자 문제를 이유로 멕시코·캐나다·중국에 무역전쟁의 포문을 여는 듯하다가 데드라인 직전에 “딜메이킹”을 선언하며 관세 부과를 철회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보다 몇 배로 강화된 터보엔진을 달고 거침없이 관세 무기를 휘두른다.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지만, 몇 가지 주목할 패턴이 보인다.
첫째, 최대한 압박(Maximum pressure)을 가하며 서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조치도 “트럼프니까”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이다. 대(對)멕시코·캐나다 관세(25%)를 대중국(10%)보다 훨씬 높이며 우선적 협상 타깃으로 삼은 것도 두 이웃 나라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70∼80%로 높아 미국의 레버리지가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먼저 빠른 승리를 낚은 다음 더 강하고 복잡한 상대(중국)를 치겠다는 셈법으로 보인다.
둘째, 딜메이킹과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 시한 직전에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상대국 정상들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며 딜을 성사시킨 후 자신의 트루스소셜 사회관계망(SNS)에 최초로 올렸다. 설사 장관급에서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졌더라도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화룡점정 하는 이는 트럼프여야 한다.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어프렌티스’ 매회의 마지막 장면은 항상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회의실 중앙에 클로즈업되는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당신 해고야”(You are fired!)로 막을 내렸다.
중국이 전면적 보복보다는 절제된 관세와 실효성 없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대응한 것도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약해 보이지는 않으면서 확전을 피하며 명분을 살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중국은 트럼프의 일방주의로 인한 폐해도 있지만, 많은 국가에서 반(反)트럼프 정서가 확산됨에 따라 자국의 영향력을 더 확대할 기회로 본다. 유럽연합(EU)과 아시아·남미 등 많은 국가도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서로 간에 교역을 더 늘리며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때 한국이 첫 번째 공격 상대였다면, 2기에는 멕시코·캐나다·중국·EU·콜롬비아·파나마·그린란드 등으로 전선이 확산하고 있다. 캐나다 전직 장관이 트럼프로부터 공격받는 국가들 정상 간에 회담을 열자고 언론에 제안하니, 그런 나라가 너무 많아서 자리 잡기가 힘들 거라는 자조 섞인 조크가 나온다. 우선적 타깃이 많은 상황에서는 당분간 레이더에 안 잡히게 저공비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 월드에서는 어떤 국가·산업·자유무역협정(FTA)이든 관세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다. 일반관세, FTA 개정, 섹터별 협정, 자율적 수출 제한, 쿼터 설정 등 모든 가능한 방식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 1기의 한미 FTA 개정 때는 이행 5년 차밖에 안 되던 시점이라, 무세화(無稅化)가 많이 진전이 안 된 상태였다. 미국의 추가 개방 요구를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 FTA 이행 13년째가 되는 지금은 공산품은 물론, 극소수 농산품을 제외하고는 상호 무관세로 수출입을 하는 상태다. 그만큼 추가 개방 민감성이 대폭 완화된 것이다. 사실, 한미 FTA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최신 통상 협정에 비해 낙후된 부분이 많다. 전자상거래 챕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최초의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타결된 협정이다. 미국이 판도라의 박스를 다시 열자고 하면, 우리도 새로이 요구하고 얻어낼 부분들이 있다.
리더 간 딜메이킹이 중요한 트럼프 스타일로 볼 때 우리의 현 정치 상황에서 성급하게 서두를 필요도 없다. 트럼프가 예고한 섹터별 관세 조치, 일본·EU 등 앞선 국가들의 협상 추이를 보면서 차분하게 준비하면 된다. 마지막 순간에 다가올 트럼프식 벼랑끝전술과 최대한의 압박을 꿋꿋하게 버텨내려면 국내 정치 환경의 안정과 여야를 넘어선 국가적 단결이 필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