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지난 1월 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 회의실에서 디스크 질환 치료에 좋은 ‘신전자세’를 시범 보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는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로 올바른 신전자세는 천장을 바라봐야 한다.  윤성호 기자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지난 1월 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 회의실에서 디스크 질환 치료에 좋은 ‘신전자세’를 시범 보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는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로 올바른 신전자세는 천장을 바라봐야 한다. 윤성호 기자


■ M 인터뷰 -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해마다 치료 신규환자 1000명
2년 넘게 진료 대기‘척추의 신’

나쁜 자세 쌓이면 디스크 질환
허리 뒤로 펴는‘신전자세’도움

디스크, 운동으로는 치료 안돼
해로운 것 안하려는 노력 필요

제대로 된 교본없는 척추 질환
환자가 내게 가장 큰 스승이죠


허리·목디스크 환자 300만 명 시대, 환자들에게는 ‘척추의 신(神)’으로 불리는 의사가 있다. 그에게 한번 진료를 받으려면 2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 매년 치료하는 신규 환자만 1000여 명이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46만 명이다. 그가 쓴 ‘백년목’ ‘백년허리’ 등은 환자들에겐 필독서다. 환자들에게 올바른 운동법을 알려주기 위해 시간을 쪼갠 것이다. 외래진료를 기다리거나 치료받는 동안 잘못된 운동법으로 관리한 탓에 악화된 환자들을 위해서다. 지난 1월 2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만난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환자는 가장 큰 스승이며, 진료실은 의사로서 성장한 곳”이라고 말했다.

재활의학과는 ‘피안성 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불리는 인기과 중 하나다. 하지만 정 교수가 1980년대 후반 의대 본과에 재학하던 시절의 재활의학과는 대표적인 비인기과였다. 당시 재활의학과를 택하면 생활고 탓에 밤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투잡’을 뛰어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정 교수에겐 확신이 있었다. 현대인을 둘러싼 생활여건이 점차 나빠지고 고령사회가 되면 관련 질환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활의학과는 의료분과 중에서 미개척 분야이기도 했다. 이는 정 교수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정 교수는 수십 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다. 정 교수는 “재활의학과가 미개척 분야라서 매력적이었다”며 “설사 생계를 위해 밤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해도, 낮에는 가슴 설레는 진료를 할 수 있는 과로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활의학과는 오랫동안 빛을 못 보던 진료과였다. 2002년 정 교수가 미국 연수 당시 만났던 소아과 의사는 “재활의학과가 미래가 촉망되는 과라고 생각해 한때 전공하려고 했었다”며 “하지만 재활의학과는 여전히 유망한(Promising) 과로만 머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활의학과의 위상을 정확히 알려주는 얘기였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2010년대부터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노트북이 보편화하면서 목디스크 환자가 급증했다. 목디스크 환자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만에 약 40% 늘었다. 인구구조가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20% 이상 차지)로 가파르게 악화되자 재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정 교수의 ‘시간’이 왔다. 허리·목디스크 환자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요통은 국민 10명 중 8명이 느껴 ‘국민병’으로 불린다. 정 교수가 허리근력 운동을 하다가 요통을 앓으면서 마비까지 겪었던 경험은 환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 교수가 5년간 아팠던 경험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2006년부터 5년 정도는 하루 종일 안 아픈 때가 없었어요. 허리 통증 때문에 마비가 오는 것까지 겪었어요. 내 몸으로 온갖 통증을 겪다 보니 환자 통증을 해석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요. 환자를 아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요즘은 그때 아팠던 게 참 감사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정 교수는 자신의 허리 통증이 낫는 과정을 보면서 새 치료법을 찾았다. 수술하지도 않았고, 힘든 운동을 굳이 하지도 않았다. 허리통증은 서서히 사라졌다. 해법은 ‘백년허리’란 책에 담았다.

“요통은 환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환자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어떤 자세로 자고, 일하며 일상생활을 하는지 의사는 알 수가 없어요. 디스크는 생활습관과 밀접한 질환입니다. 잘못된 자세와 습관이 쌓여서 생기는 병이에요. 운동으로 치료되는 디스크는 없습니다. 관절은 운동으로 좋아질 수 있죠. 하지만 허리와 목디스크는 좋은 자세로 좋아집니다. 디스크에 좋은 운동을 하려고 하지 말고 디스크에 해로운 걸 안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디스크는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를 이어주는 ‘추간판’을 뜻한다. 무리한 힘이 가해지면 손상된 디스크가 찢어진다. 요통과 목 통증 원인은 결국 디스크가 찢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팔과 다리가 저리는 등 방사통까지 유발된다.

“디스크 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디스크 내부만 찢어진 ‘내장증(內障症)’, 디스크 중심에 있는 젤리성 물질인 수핵(髓核)이 터져 나온 ‘탈출증(脫出症)’이 있어요. 예를 들어 목디스크 내장증이 있으면 머리 주변에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두통이 오거나 어지럽기도 하고, 어금니가 아플 수도 있고, 눈에 통증이 오거나 이명이 들릴 수도 있죠.”

디스크를 치료하는 데는 최소한 몇 달 정도가 걸리지만 찢어질 때는 1∼2초면 족하다. 디스크를 치유하는 해법으로는 ‘신전(伸展) 자세’를 권한다. 정 교수의 상징이 된 자세기도 하다. 이는 허리를 뒤로 쭉 펴는 동작을 말한다. 허리를 뒤로 젖힌 상태로 유지하면서 디스크에 난 상처를 붙여주는 것이다. 상처가 맞닿으면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증상은 완화된다.

“디스크 질환은 자연 치유될 수 있어요. 다만 치료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내 디스크가 왜 찢어졌고 어떻게 붙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디스크에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요추 전만(앞으로 불룩 휘어짐) 자세를 유지해야 해요. 디스크는 피부보다 치료 시간이 오래 걸려요. 피부는 혈류가 풍부하고 세포의 신진대사가 빨라 빠르게 회복되지만 디스크는 치료되는 데 오래 걸려요. 크게 탈출증이 오면 1년 반 내지 2년, 작게 탈출하면 최소 3개월이 걸려요.”

오랜 디스크 치료 기간 중 잘못된 운동법 탓에 악화된 환자는 집필과 유튜브 운영의 동기가 됐다. 정 교수의 책을 열심히 읽은 후 환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다시 온 환자들은 두고두고 기억난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안 좋다고 말합니다. 제 책이나 동영상을 보고 막연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암기보다는 이해를 해야 성적이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요통 탓에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던 환자에게 책을 세 번 읽고 오라고 숙제를 내줬어요. 재진료를 할 때 환자가 해탈한 표정으로 와서 자신이 왜 아팠는지 알게 돼 통증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보람찼어요.”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본 지 올해 28년째, 정 교수는 서울대병원이란 토대 때문에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환자는 정 교수가 디스크 진료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해준 스승이다.

“환자는 가장 큰 스승이죠. 척추질환에 대한 제대로 된 교본은 아직 없어요. 환자를 치료하면서 많은 임상경험을 쌓고 척추질환에 대한 큰 통찰을 얻을 수 있었어요. 2022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안식년을 1년 가졌는데요. 그때 책도 쓰고, 유튜브도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진 않더군요. 진료실에 나와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생기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어요. 진료실에서 지치지 않고 진료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던 거죠. 환자에겐 ‘친절한 의사’보다는 ‘잘 치료하는 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의사의 본질에 충실한 게 가장 중요하니깐요”

권도경·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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