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중국 딥시크의 극적인 등장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심각한 사안들이 산적하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탄핵과 조기 대선에만 집중돼 있다. 물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비상계엄으로 국내 정치가 요동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국정 공백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행정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최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연금개혁을 신속하게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2월 안에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이른바 모수개혁만이라도 신속하게 마무리하자는 게 민주당의 제안이다. 연금개혁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생각할 때, 정치적 의도가 충분히 의심되긴 하지만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연금개혁에는 반대한다. 그 정치적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기에 우울한 소식이다.
야당의 제안도 여당의 반대도 모두 정치적인 행동이다. 정권 획득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넘지 말아야 할 선(線)’ 또는 ‘정치적 품격’의 수준이다.
정치인에게는 국민이 기대하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이 선이 정치적 품격의 수준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 선을 넘지 않는 정치인이 품격 있는 정치인이다. 반대할 정책이 있고, 반대해서는 안 되는 정책이 있다. 품격 있는 정치 전략이 있고, 그렇지 않은 정치 전략이 있다. 경쟁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해도,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이유로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다. 중요한 정책을 국면 전환만을 위해 추진하는 것 또한 선을 넘는 저열하고 품격 낮은 정치 전략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정치인이 스스로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품격의 수준이 너무 낮다. 불법만 아니라면 정무적 판단이라는 핑계로 저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대다수 국민은 정치인에게 높은 수준의 정치적 품격을 기대한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인의 언행을 관찰하고, 품격 낮게 선을 넘는 정치인을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한다.
연금개혁은 한국 정치의 품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미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소득대체율 ‘1%포인트’ 때문에 결렬됐던 연금 모수개혁을 여당이 갑자기 반대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뻔한, 선을 넘는 행위였다. 낮은 정치적 품격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제22대 총선 결과였다. 현재 야당의 낮은 지지율 또한 마찬가지다. 연금개혁이 야당의 선거전략이라도, 국민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야당의 품격 있는 전략이자 장기적으로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전략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비이성적 임기응변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품격이 낮은, 선을 넘는 정당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정치적 품격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선택을 받는 최선의 방법이다. 품격 낮게 국민이 생각하는 선을 넘는 정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을 기회를 잃고, 여야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기회를 잃을 것이다. 여야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연금개혁에 성공하기 위해 품격 있게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