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보여준 가성비 쇼크 온디바이스 AI 단말기도 중요 AI 변방국서 중심 진입할 찬스
한·미·일 AI칩 공동개발 추진 대만계 AI 동맹에 맞서는 연대 삼성전자 재도약 절호의 기회
“인공지능(AI)은 그동안 성능과 속도가 좌우했지만, 앞으론 비용 절감도 중요하다.” 중국 AI 모델인 딥시크에 대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의 감상평이다.
딥시크는 값싼 저사양 AI칩으로 챗GPT에 버금가는 성능을 선보였다. 그 밑에는 세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첫째, 사전 학습을 건너뛰고 강화 학습만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기존 AI들이 많은 돈을 들여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 학습을 시킨 뒤 강화 학습을 통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것과 다른 방식이다. 둘째,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시스템 구조)로 효율성과 속도를 높였다. 복잡한 작업을 작고 쉬운 여러 개 작업으로 쪼개 꼭 필요한 부분만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표준인 32비트 단정밀도(부동소수점)를 8비트로 확 끌어내렸다. AI 모델이 붕괴하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 정밀도를 낮춰 비용과 시간을 줄인 것이다.
올트먼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4일 급거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3자 회담을 했다. 미국에서 5000억 달러(약 732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를 발표한 직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아래 천문학적인 자금과 엄청난 전력까지 이 프로젝트에 쏟아붓기로 했지만,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딥시크에 밀려 자칫 막대한 돈만 삼킨 채 과잉 투자로 끝나는 악몽을 막기 위해서다.
오픈AI-ARM(최대 주주가 손 회장)-삼성전자 연합은 새 AI 칩을 만들기 위한 삼각동맹이다. 대만계 AI 동맹(엔비디아-TSMC-AMD)에 맞서는 구도다. 스타게이트가 데이터센터 설치 비용을 줄이려면 엔비디아의 값비싼 그래픽카드(GPU) 독점부터 깨트려야 한다. 삼성전자로선 절호의 기회다. TSMC는 그동안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애플·엔비디아·퀄컴 등의 대형 주문을 독식했다. 이 큰손들은 경쟁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인텔에 대해 “반도체 설계 정보를 유출할지 모른다”고 의심해 왔다. 하지만 AI 업계의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은 삼성전자와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는 새 고객층이다. 잘만 하면 파운드리 시장의 64.9%를 장악한 TSMC를 추격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딥시크가 모델 경량화로 온디바이스 AI의 신천지를 연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소형 AI를 스마트폰·자율주행차·드론 등에 장착해 자체 연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트먼도 연일 “새로운 AI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에는 꽃놀이패다. 삼각동맹의 새로운 AI용 단말기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들이 재조명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구글·퀄컴과 동맹을 맺고 ‘서클 투 서치’ 기능 등을 탑재한 갤럭시 AI폰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여기에 지지부진하던 엑시노스 AP와 NPU(Neural Processing Unit) 개발 속도도 끌어올릴 수 있다.
딥시크발(發) 혁신은 한국 AI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드웨어에서 밀려도 뛰어난 소프트웨어로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면 저비용으로도 빅테크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거대언어모델(LLM)’을 내세워 개발자 중심의 AI 시대를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뛰어난 가성비의 ‘소형 AI 모델’에 기반한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초격차에 눌려 AI 변방 국가로 밀려났던 한국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없어도 재도전을 꿈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AI 경쟁이 세계 패권을 놓고 진영 간 대항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딥시크가 오픈 소스에 무료 공개한 것은 사용자와 데이터를 늘리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딥시크 금지령이 확산하고 있다. 보안 우려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대만계 AI 동맹에 철저하게 왕따 당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TSMC가 미국 반도체 산업의 100%를 뺏어 갔다”며 부정적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한·미·일 AI 삼각동맹은 중국은 물론 대만계 AI 동맹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연합군인 셈이다. 어쩌면 딥시크가 선사한 축복의 선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