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숨진 가수 송대관
7일 숨진 가수 송대관


또 하나의 별이 졌다. 한국 트로트 시장의 부흥을 일군 가수 송대관이 천국행 ‘차표 한 장’을 끊고 7일 눈을 감았다. 78세.

송대관은 이 날 오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서울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의 아내 이모 씨는 문화일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어젯밤 남편이 설사를 해서 너무 기력이 없었다. 병원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CPR을 했지만 사망 선고를 받았다”면서 오열했다.

송대관이 앞서 담도암으로 투병을 했던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 씨는 “담도암이었는데 5년이 지나서 완치 판정을 받았었다”면서 “그동안 많이 아팠는데 치료가 잘 됐다. 그런데 어젯밤 몸이 안 좋아 오전에 응급실에 왔는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우리 남편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1946년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오랜 기간 무명 생활을 거쳤다. 그러다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해 연말 가수왕도 차지했다. 1980년 미국으로 넘어갔으나 1988년 귀국 후 이듬해 발표한 ‘정 때문에’로 당시로써는 이례적인 20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며 다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차표 한 장’, ‘네박자’,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의 히트곡을 연이어 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로 거듭났다.

이 시기 고인은 지난해 숨진 현철을 비롯해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활동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이민 생활을 함께하며 오랜 기간 친분을 쌓은 태진아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장기간 열기도 했다. 2002년에도 아내가 가사를 붙인 ‘유행가’로 인기를 얻는 등 후배들의 틈바구니에서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 날 설운도는 문화일보에 “얼마 전 현철 선배님을 보냈는데 송대관 선배님까지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송대관 선배님은 트로트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계기를 만든 분이셨다.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 놓은 노래들은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될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한편 송대관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돕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은 송영근 열사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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