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비욘세 ‘내가 여기 있었지’

스타의 기준은 섭외하기 어려운 순서다. 전화 한 번에 실물 영접이 가능한 연예인은 성실하지만 갈급한 자다. PD를 피(P) 말리고 더러운(D) 직업이라 정의한 예능 선배가 내 속의 절반은 섭외하느라 썩었을 거라 털어놓은 적이 있다. PD가 갑인 줄 착각했다가 소속사의 도도함에 기겁한 후배는 다른 부서로 옮겨가 펄펄 날더니 자연 다큐의 대가가 됐다. 밀림에 약육강식은 있지만 감언이설은 없더라는 소회가 애잔했다. 그는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상 준다면 다 올 것 같지만 연예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토토즐’을 연출할 때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청춘스타 라이벌전을 구상한 적이 있다. 시상식을 빙자하여 두 스타를 한자리에 세워보려는 속셈이었다. 김희선과 김지호는 1990년대 중반 이른바 ‘TV시티’(1995년 김지호 주연의 드라마 제목이기도 하다)의 ‘라이징 스타’였다. 두 배우가 쇼 프로에 동반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으나 결과는 아쉬웠다. 섭외는 성사됐는데 투 샷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CF 촬영으로 시간(교집합) 맞추기 어렵다는 변명도 나왔지만 한 화면에서 요모조모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나름 ‘빅매치’를 기대한 팬들은 스타 쇼 두 개를 붙여 놓고 라이벌전처럼 예고했다며 적잖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상에 선 두 사람은 안 만나는 걸까 못 만나는 걸까. 내가 보기에 이유는 하나다. 각자 다른 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음악동네의 명실상부한 라이벌은 비욘세(1981년생)와 테일러 스위프트(1989년생)다. 명실상부란 이름(名)과 실력(實)이 맞아떨어질 때 쓰는 말이다.(유명무실은 그 반대) 오랜 전통의 그래미 2025를 앞두고 누구는 넘어야 할 산이니, 격돌이니 하는 말들이 무성했는데 결과는 비욘세의 승리였다. ‘카우보이 카터’로 생애 처음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는데 시상자는 그 상을 4번이나 받은 최초의 아티스트이자 작년 수상자인 스위프트였다. 일부 미디어가 뽑은 제목은 얄궂다 못해 얄미웠다. ‘비욘세 역사를 만들고 스위프트 빈손으로 떠나다’ 비록 빈손이어도 빈 가슴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하는 근거가 있다.

제27회(2009년) MTV VMA(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스위프트는 최우수 여성 뮤직비디오상 수상자였다. 소감을 말하는 중 갑자기 유명 래퍼 카녜이 웨스트가 무대에 난입했다. “네가 아니고 비욘세가 최고야” 무뢰한의 기습에 일격을 당한 스위프트는 지진 맞은 양 퇴장해야 했는데 그해 대상을 받은 비욘세는 그녀를 다시 무대에 불러들여 소감을 말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명실공히 ‘넘사벽 자매’가 된 두 사람은 영화관에 다정하게 붙어 앉아 팝콘을 먹는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친분을 인증했다. 스위프트는 “언니의 관대함, 회복력과 다재다능함은 제 커리어 내내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며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을 보면 스티비 원더와 폴 매카트니의 2중창(‘흑과 백’)이 떠오른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은 피아노 키보드 위에서 나란히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죠.’(Ebony and Ivory live together in perfect harmony side by side on my piano keyboard)

비욘세의 노래 ‘내가 여기 있었지’(I was Here)는 사랑받은 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내가 걸어온 길 가운데 의미가 있는 것’(there was something that meant something that I left behind) 그건 ‘누군가의 삶에서 내가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것’(that I meant something in, somebody’s life) 그것이야말로 ‘내가 여기 있음으로써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졌다는 걸’(Left this world a little better just because I was here) 확인하는 길이다. 그래서 묻는다. 지금 여긴 어딘가(Where am I now).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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