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브루탈리스트’ 1·2부 사이 인터미션 배치
낯선 미국땅서 건축혼 불태우는 유대인 이야기
나치 수용소 묘사 없이도 홀로코스트 비극 표현
긴 러닝타임에 관객들 집중력 흐트러질 가능성
충분한 휴식시간 제공으로 여운·관람의 폭 넓혀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상영 도중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 공연장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영화관에서는 낯선 ‘인터미션’을 설치한 것이다. 3시간 35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작품을 보다 더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됐다. 영화 관람 방식의 폭을 넓힌 사례로서 관객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인터미션
이 작품의 인터미션은 전례에 비해 길다. 앞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년·3시간 27분)가 ‘막간’이라는 자막을 띄우고 인터미션을 5분 둔 적이 있다. 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1959년·3시간 42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4시간 11분) 그리고 양더창(楊德昌)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년·3시간 57분), 하마구치 류스케(濱口龍介) 감독의 ‘해피 아워’(2021년·5시간 28분) 등은 10분 정도 됐다. ‘브루탈리스트’의 15분은 관객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일행과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넉넉한 시간이다.
극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특별히 계산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1부 ‘도착의 수수께끼’―인터미션―2부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 등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제목으로 이어졌다. 전체 줄거리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가상의 인물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에 관한 이야기다. 소제목의 암시대로, 1부는 토스가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해 겪는 난관을 그렸다. 유럽에 남아 있던 토스의 부인 엘리제벳(펠리시티 존스)이 합류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2부에서는, 토스가 견고한 콘크리트 건축물을 올리며 예술혼을 불태운다.
소제목을 붙여둔 만큼 1·2부는 별도의 자기 완결성을 갖췄다. 인터미션이 시작되면 1부의 마지막 장면을 보충 설명하는 사진 1장이 스크린에 뜨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 흐른다. 감상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관객은 그 사진을 보면서 1부 감상의 여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지켜보니, 인터미션 동안 소란한 분위기가 조성되지는 않았다.
◇주인공의 내면도 매끄럽게 전달
토스는 유령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가진 인물이다. 수척한 얼굴빛의 배우 브로디는 특유의 공허한 눈빛과 처진 걸음걸이로 토스를 실존인물처럼 형상화한다. 토스는 헝가리에서는 예술가 대접을 받았던 건축가다. 그러나 그는 나치 1호 강제 수용소 ‘다하우’에 있었던 어두운 경험을 지니고 있다. 마음에 죽음 구멍이 뚫린 듯 보이지만, 예술을 향한 혼은 죽지 않았다. 일단 예술혼이 발동되면 어깨와 허리가 꼿꼿해지고 공허한 눈빛에 생기가 돈다. 그러다 불붙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발작적인 행동도 한다.
홀로코스트 소재, 브로디 출연 등에서 영화 ‘피아니스트’(2002년)가 연상된다. 브로디가 모델로 삼은 실존 예술인 브와디스와프는 전쟁 한복판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며, 예술인의 숭고한 면모를 보여줬다. 이와 달리 토스는 훨씬 복합적이다. 영화는 나치가 패망한 지 2년이 지난 1947년 미국에서 시작된다. 대서양을 넘은 배의 컴컴한 밑바닥에 있던 그가 갑판에 올라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빛을 받은 눈으로 본 여신상은 거꾸로 뒤집혀 있다. 자유? 그게 어떤 거였는지 되묻는 듯한 이미지가 그의 앞길을 암시한다.
영화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대한 묘사나 회상 장면을 일절 넣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토스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이나 대사도 전혀 없다. 그런데도 ‘죽은 채로 살아남았다’는 복잡한 인물의 내면이 객석에 전달된다. ‘절멸 수용소’라는 이름대로 나치는 인간성과 존엄성을 체계적으로 멸살했다. 가스실에서 학살하기에 앞서, 인간성부터 말살한 후 목숨을 앗아갔다는 역사적 사실은 관객의 연상에 맡긴다.
따라서 인터미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상을 잠시 정돈할 수 있는 시간으로 요긴하게 활용될 수도 있어 보인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연출자가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인터미션이 감상을 방해한다면 연출자, 관객 모두에게 손해”라고 짚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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