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집회로 전국 몸살 사실은 뒷전, 선동적 구호 가득 예산 삭감으로 행정 마비 심각
헌재와 사법부도 불신의 대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궤변 광기의 시대 넘어설 합리 필요
주말만 되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심은 마비 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와 반대 집회가 세 싸움을 벌이듯 확산하고 있다. 지난 주말만 해도 서울 여의도·광화문, 대구 동대구역 앞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최근 우파 집회에서 뜬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는 대구 집회에서 “조기 대선 말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후레자식과 뭐 다른가” “헌재가 대통령 탄핵하면 제2의 을사5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국회의원들은 전 씨와 사진 한번 찍고 이를 SNS에 올리며 홍보에 열 올리고 있다. 노량진에서 수험생에게 강의하던 전 씨가 돌연 우파의 영웅이 됐다. 사실에 맞지 않는 얘기를 쏟아내도 군중은 그저 환호할 뿐이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와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 내란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며 자신이 최근 이장직을 사퇴한 ‘개딸’에 동원령을 내렸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광장의 힘에 다시 기대려 한다. 대화와 타협의 장소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텅 비었고, 선동가들이 득실거리는 광장은 누가 더 지지자를 동원하느냐에만 집중돼 있다. 이런 와중에 행정부의 마비와 붕괴는 심상치 않다. 민주당이 검찰·경찰·감사원·방송통신심의위 등의 특활·특경비를 전액 삭감하면서 이들 부처는 기능이 정지될 상황이다. 검찰·경찰은 수사와 시위 진압 등의 차질을 빚고 있다. 밥값도 없을 지경이다. 시위 진압 장비 예산 삭감으로 경찰 기동대는 몸으로 막아야 한다. 감사원은 지방 출장을 못 가 감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방심위도 전기료가 부족해 모니터도 일부 끄고 출장도 자제한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운영경비 3억3000만 원 전액이 삭감되면서 직원 20명의 월급만 나온다. 화장실 청소도 난방도 못 할 지경이다. 산유국 꿈을 심어준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1000억 원이 들어갔지만, 무위로 끝났고, 유럽 지역 원전 수출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는다.
국민 신뢰로 먹고살던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는 성난 군중의 타깃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탄핵 시 헌재를 부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사법 역사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는 헌재는 일부 재판관의 편향적 행태가 문제 되면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가 시스템 어느 것 하나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다. 윤 대통령은 연일 옥중 정치를 통해 구명 투쟁에 나서지 않는 여당을 추동하고 있다. 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의대 입학정원 문제, 연금 개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 대응 등 시급한 현안들은 뒷방 신세다. 대통령과 총리의 업무를 다 해야 하는 최상목 대행이 국회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 나가니 언제 국정에 집중하겠나.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 “(비상계엄으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호수 위의 달 그림자를 쫓고 있다”고 했다. 물론 야당의 29차례에 걸친 탄핵소추 추진과 일방적 예산 삭감 등으로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렸지만, 계엄 선포가 ‘트리거’가 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일이 일어났고 대한민국은 잔잔한 호수가 아닌 태풍 한가운데 있다. 문제는 헌재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지금보다 더 악화하면 했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행한 전망이다.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가 됐는데 정치가 소멸했다”면서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는 위험천만하다”고 했다.
신문·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들도 극렬 유튜버들의 구독 취소 운동, 시청률 추락 운동에 영향을 받는 실정이다. 합리적인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격렬한 선동만 주목받는 시대다. 조기 대선이 열려도 문제, 안 열려도 문제인 상황에 직면했다. 정계 원로들이 개헌을 탈출구로 삼아 정치 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동시에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까.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그 후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의 트라우마가 짙게 드리운 상황에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광기의 시대에 그래도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합리적인 목소리와 움직임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