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산에서 만난 친구들. 필자(앞줄 오른쪽)의 꼬드김에 포졸 옷을 입은 친구의 모습이 재밌다. 열세 살 때나 쉰세 살 지금이나 배 나오고 주름이 는 것뿐, 변함이 없는 철부지들이다.
지난해 남산에서 만난 친구들. 필자(앞줄 오른쪽)의 꼬드김에 포졸 옷을 입은 친구의 모습이 재밌다. 열세 살 때나 쉰세 살 지금이나 배 나오고 주름이 는 것뿐, 변함이 없는 철부지들이다.


■ 사랑합니다 - 노을빛 추억 함께하는 친구들 <상>

친구 놈 S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번 친구들 모임에 본인만 불참하여 못내 서운한 마음에 전화한 듯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들로 서운함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결국엔 목소리만으로도 반가운 사이인 것을 그렇게 마음 표현을 대신했다. 단체 대화방에 올려놓은 사진을 실감 나게 설명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함께 있었던 듯 깔깔깔 웃으며 전화기 너머로 숨이 넘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 또한 나의 특혜였다.

‘우리도 분위기 있게 가을 산에 한번 가 보자’ 하는 누군가의 의견에 모두 다 좋다 했고, 서울 사람이 다된 양 ‘서울 하면 남산이지’ 하는 무언의 동의 속에 가을 남산을 오르기로 했다. 반백을 넘긴 나이라 관절마다 삐거덕 소리가 난다 하며 남산에 올랐다. 마침 방문객들을 위한 이벤트로 여러 전통의상을 입어 볼 수 있었다. 살짝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친구 놈에게 “나 저 옷 진짜 입어 보고 싶은데 혼자는 못 입겠다. 네가 먼저 입어 주면 나도 입을게” 하고 꼬드겼고 다른 친구들은 “유경이 소원인데 들어줘라, 영광인 줄 알아라, 그것도 못 해주냐…’라며 한 놈을 앞에 두고 예닐곱 놈이 난리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 놈은 포졸 옷을 입었고 나는 “네가 입은 걸 봤으면 됐다. 난 안 입으련다”하고 배신 아닌 배신을 해버렸다. 그 와중에 묵직한 카메라를 든 어느 분은 모델이시냐며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냐 하시더니 포졸 친구를 앵글에 담아 가신다.

그렇게 그날의 그 상황설명에 모임에 못 나온 친구는 서운함도 잊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해 질 녘에 하산했다는 내 이야기에 뜬금없이 하는 말이 예전 우리 살던 신평에서는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는 걸 봤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못 봤단다. 본인이 동해에 있어서 해가 지는 걸 볼 수가 없는 건가…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친구 놈 말대로 우리 살던 동네에선 해넘이를 봤던 것 같다. 그 시절 시계가 있나 폰이 있나, 배꼽시계만 유일해서 허기가 느껴지면 집에 갔으니…책가방을 던져놓고 뛰쳐나가는 우리들 뒤통수에 엄마는 “놀다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면 들어와라∼” 하셨다. 언제나 놀이터에서 놀든 골목에서 놀든 정신없이 뛰어놀다가도 동사무소 쪽 하늘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을 맹세하곤 했다.

그 짧은 시간이 서쪽 하늘엔 아마도 짙은 석양이 깔리고 잠시 잠깐 짧은 시간 노을이 어여쁨을 뽐내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애국가가 끝나면 ‘얼음 땡’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집으로 뛰어갔다. 그때까지도 작동하지 않던 배꼽시계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밥 익는 냄새가 났고 골목 사이사이 연탄 화덕에 석쇠 이불 덮고 굵은 소금으로 치장한 고등어구이 냄새가 진동한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면 세숫대야 하나 물 받아놓고 이놈 손, 저놈 손 들락날락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하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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