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세계적 화제작 ‘오징어게임 2’(오겜2)의 위력을 뛰어넘은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지난달 말 공개된 8부작 ‘중증외상센터’다. 지난 5일 넷플릭스 사이트인 ‘넷플릭스 톱10’에 따르면 1월 마지막 주(1월 27일∼2월 2일) ‘중증외상센터’의 시청 수는 1190만(총 시청시간 8270만 시간)으로 비영어권 TV쇼 1위에 올랐다. 직전까지 5주 연속 1위를 지키던 ‘오겜2’(520만 시청 수)를 2위로 밀어낸 결과. 지난해 12월 26일 개봉한 이후 시간이 제법 흘러 ‘오겜2’의 주목도가 현저하게 낮아진 상태라고 해도 의외였다. 더구나 여전한 의정 갈등으로 의사들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중증외상센터’가 성공한 비결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판타지. 둘째, 주지훈·추영우·윤경호·하영 등 주요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열연. 셋째,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메시지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이 되는 점은 생생한 리얼리티에 있다. 슈퍼 히어로 같은 천재 외과의사 백강혁(주지훈)이 부상자를 둘러업고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판타지가 종종 있지만, 외상센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매우 사실적이다. 특히,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와 응급의료진이 겪는 문제들 속에는 의사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것 같은 섬세함이 살아 있다.
실제로 ‘중증외상센터’의 리얼리티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드라마의 원작인 동명의 웹소설을 쓴 한산이가(본명 이낙준) 작가가 의사다. 그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의료 정보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의 멤버이고, 현재는 웹소설에 전념하고 있다. 한산이가 작가는 의사로서 자신이 부딪쳤던 경험에 근거해 현실의 문제점들을 짚는다. 인력난 속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전하면서도, 왜 응급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조인지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그동안 전문 직업인 출신의 작가가 쓴 드라마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이혼전문 변호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뤄 최고 17.7%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SBS ‘굿 파트너’는 실제 이혼전문 변호사 최유나 씨가 썼다. 2018년 인기리에 방송됐던 JTBC ‘미스 함무라비’를 집필한 작가도 판사 출신인 문유석 씨다. 문 씨는 당시 주인공 판사를 실존 인물처럼 세밀하게 그려 화제를 모았다. 2023년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원작 웹툰을 만든 사람도 간호사 출신의 이라하 작가다. 전문 직업인 작가들은 자신이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을 생생하게 고증해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호평받았다.
이들 전문 직업인 작가에 의한 리얼리티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불확실한 정치 상황 속에서 부쩍 주춤해진 한류, 그리고 비용의 압박에 신음하는 K-무비, K-드라마의 제작 환경에 힌트가 될 수 있다. 물론 ‘오겜2’ 같은 과감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중증외상센터’처럼 기본에 충실한 작품도 이어져야 한다. 정교한 리얼리티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