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 초중반의 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10일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권을 향한 청사진을 보일 좋은 기회였다. 예상대로 그는 평소의 소신에서 상당히 우(右)클릭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했다.

우선, 경제 성장과 회복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기본사회와 함께 이를 위해 지금은 경제 회복과 성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 중심 첨단 기술 산업 육성, 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투자, 한류를 바탕으로 한 문화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제시했다. AI 시대 노동복지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제로 가야 한다는 것, 정년 연장 및 노동시간 단축과 동시에 유연화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구는 모든 정부가 내세우는 비전이다. 그러나 구체화할 전략이 없으면 이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이 대표는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나 색깔이 무슨 소용이냐고 소리를 높인다. 맞는 말이다. 쥐를 잡는 데 고양이가 중요하지 색깔이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지금 경제를 살리는 고양이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고 각종 부담을 줄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 기업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기본사회와 기본소득, 지역화폐 발행을 통한 현금 살포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한다. 이는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전제로 한 성장전략과 정반대다. 장시간 연구개발(R&D)이 필수인 첨단 산업 분야의 주 52시간제 유연화조차 반대하는 민주당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반도체 산업에서의 52시간제 완화나 사용후핵연료의 장기 보관을 위한 고준위방폐장 설립, 국가기간전력망 확충법 등 국가 산업의 근본인 노동과 에너지 산업에서의 시급한 과제를 하나도 처리하지 않는 민주당이다. 당장이라도 처리할 수 있는 각종 민생 법안부터 입법하고 성장을 얘기해야 진정성이 있지 않겠는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불확실한 무역 환경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엔 일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젊은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주 52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반면,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시급한 현안의 대책은 없고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장밋빛 미래만 제시한다. 하긴, 이번에도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니까 진짜 그런 줄 아는가 보다’라며 비아냥거릴지 누가 알겠나.

당내 이견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재명 일극 체제에서 이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사회와 기본소득은 결국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북한의 김일성도 ‘인민 모두가 이밥에 고깃국 먹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전했지만, 결과는 지금의 북한이다. 다른 입장과 생각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주 4일 근무, 기본소득이 보장된 기본사회, 정년 연장 등 달콤한 미래를 제시한다. 한 번은 몰라서 속았다고 하자. 또 속는다면, 속은 사람 책임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