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합니다 - 노을빛 추억 함께하는 친구들 <하>하>
어느 날의 일이 하나 떠오른다.
그날도 후다닥 씻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밥상에 둘러앉았는데 우리 여동생이 보이질 않았다. 아직 안 들어온 것이다. 동생의 부재를 알아채자마자 골목 입구 저 멀리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는데 아주 익숙한 소리였다. 동생의 울음소리였다. 나와 남동생은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골목의 앞집 여자아이가 한참이나 어린 우리 동생을 울린 것이다. 근데 그 집에는 중학교 다니는 언니가 있었던 터라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임을 생각할 때 한참 커 보였을 테니 감히 그 집 동생을 손봐줄 엄두가 안 났을 게다. 하지만 너무너무 약이 올라 우리 집 골목에서 그 집 창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보이는데 연탄재를 막 집어 던져버렸다. 창문 바로 아래엔 TV 안테나가 크게 브이 자를 그리고 서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깟 연탄재 쓸어버리면 청소가 끝날 것 같은데 이건 아니지 싶어서는 바가지에 물을 퍼서 창문 틈으로 부어 버렸다. 그 집에서는 난리가 나고 그날 밤 우리 집에 온 식구들이 다 찾아와서는 집단농성을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TV는 재산목록 1호였으니….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뛰쳐나가서 벌어진 일들이기에 나는 너무도 당당했다. 우리 엄마 아버지도 우리 사남매 누구도 야단치지 않았다. 엄마는 그 댁 안방을 청소해 주시고 아버지는 TV를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그 댁 중학생 언니는 ‘너도 저 집 형제들 서로 지켜주는 것 좀 보고 배워’ 하며 그 댁 아버지께 야단을 들었다. 그리고 ‘하 씨 집 사남매는 건드리지 마라’ 하는 특명도 떨어졌다. 우리 골목에서 우리는 참 악동이었다. 사남매이다 보니 그야말로 쪽수에서 우세였기에 웬만해선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집단적으로 깡패처럼 구는, 그런 게 아니라 돈독한 형제애 정도로 미화를 할까 한다.
그 골목에서 우리 집을 거쳐야 집에 갈 수 있는 K와는 참 많이도 싸우고 지냈는데 헬스트레이너가 되어 울퉁불퉁한 것이 이젠 내가 ‘쨉’도 안 되게 잘 컸고 우리 집을 지날 때마다 공연히 내게 한 대씩 맞고 걷어차였던 B형은 목사님이 되셨다 한다. 다행이지, 나를 용서하셨으리라.
그야말로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던 어린 시절, 그 기억이 남아있고 추억이 많은 유년시절이 내 짧은 모든 글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그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친구들과 함께 추억할 수 있고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어느 공통분모를 발견했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이지 정수리가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일이다. 반백 년 나이에 열 살 적 추억이라니 그 얼마나 옛 얘기 속의 희미함 가운데 어제 일인 양 또렷한 기억이 주는 희열이란 말인가.
친구 놈의 석양 이야기에 의도치 않게 내 어릴 적 고약함의 고해성사까지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추억이 노을을 닮았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 얘기는 아주 찰나의 해넘이 순간처럼 행복함을 주는 순간이다. 하늘을 붉게 뒤덮은 노을빛처럼 잔잔함 속에 화려했던 순간인 것이다.
기억을 추억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 기억을 총명함으로 칭찬해 주는 어릴 적 친구가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역시 석양처럼 잔잔한 아름다움이길 기도해 본다.
하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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