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디스토피아적 현상과 전망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마이클 셔머는 미래에 대한 긍정과 낙관을 이야기했다. 셔머는 “유토피아가 아닌 ‘프로토피아(Protopia)’를 목표로 해보라.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프로토피아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전 세계적으로 디스토피아적 현상과 전망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마이클 셔머는 미래에 대한 긍정과 낙관을 이야기했다. 셔머는 “유토피아가 아닌 ‘프로토피아(Protopia)’를 목표로 해보라.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프로토피아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셔머

Q.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빠지나

‘음모론’ 엔 영원한 경계 필요
성급한 일반화 등 사고의 오류
‘이상한 것’ 믿게 되는 사람들
과학은 이를 밝힐 최고의 도구

주요사건들 ‘과잉결정’ 가능성
법원 폭동, 美 국회난입 연상케
정치와 군중심리 속 이성 잃고
도덕적 감정에 굴복하게 된 탓

“尹, 본인 음모론에 영향 받아”
심연에 숨은 ‘대리진실’ 의심
비이성적 논리에 빠질 수도
기행 막을 제도적 장치둬야


인터뷰 = 김인구 문화부장 clark@munhwa.com
정리=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구속과 재판 등 요즘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날마다 헌정사 초유의 사건들로 요동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대통령이 구속되자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침입해 집단 난동을 부리면서 정치 양극화와 진영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이런 사태를 두고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마구잡이로 확산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이다. 이에 과학적 회의주의 사상가이자, 국내에도 잘 알려진 책 ‘음모론이란 무엇인가’(Conspiracy)의 저자 마이클 셔머를 서면 인터뷰했다. 원래는 그가 발행하는 세계적 과학잡지 ‘스켑틱(Skeptic)’ 코리아의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접촉했지만 법원 폭동이 벌어지면서 현안을 긴급 추가했다.

◇“음모론엔 영원한 경계가 필요하다”

―우선 ‘스켑틱’ 코리아 창간 10주년을 축하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스켑틱’과 한국 독자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의 작업이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 과학적 진실에 관한 탐구는 문명의 토대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기반이다.”

‘스켑틱’은 셔머가 1992년 창간한 과학 교양 저널이다. 진화론, 유사과학, 무신론 등 다양한 과학적 화두를 다뤄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등이 간행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는 바다출판사에 의해 2015년부터 발행됐다. 지난해 12월 40호를 맞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음모론을 분석하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음모론을 다시 돌이켜본다면.

“음모론은 세상을 설명하려는 아이디어의 하위 범주다. 어떤 음모론은 사실이고, 어떤 것은 거짓이며, 어떤 것은 판단하기 어렵다. 과학은 음모론을 다루는 데 있어 진실을 밝히는 가장 좋은 도구다. 미신과 마법적 사고, 그리고 우리 내부에 있는 인지적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것처럼 ‘영원한 경계’가 필요하다.”

◇“법원 난동 왜?…군중 심리 속에서 감정에 굴복하기 때문”

―‘영원한 경계’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한국에선 비상계엄 후 급기야 법원 폭동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는 마치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불복 후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태를 연상시킨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왜 이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까.

“사람들이 정치와 군중 심리에 관해서는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의 이성적 능력이 도덕적 감정에 굴복하게 된다. 정치는 과학이 아니다.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진 않는다. 특히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지, 누가 원하는지에 따라 그렇다.”

―폭동 가담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배후가 누구인지 여러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종교 집단과 연관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정치 선동과 종교적 믿음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사회의 주요 사건들은 ‘과잉결정’(Overdetermined)됐을 가능성이 크다. 즉, 필요 이상으로 설명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과관계를 과소평가하고 어떤 한 사람이나 한 그룹이 원인이라고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2021년 미 국회의사당 폭동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와 네오나치주의자부터 변호사, 의사, 축구 엄마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의 뒤에 어떤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기보다는, 저마다 다양한 동기를 지녔을 가능성이 더 많다. 정치와 종교의 연관성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법원 폭동 혐의로 체포된 90명 중 절반 이상이 20∼30대 젊은이들로 밝혀졌다. 기존 윤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이 60대 이상의 고령층이었음을 감안하면 매우 의외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동의하나?

“인간은 도덕적 감정이 매우 강하며, 자신이나 자신의 집단이 불공정한 대우를 당했다고 느낄 때,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도덕적 감정은 피해를 복구하려는 욕망부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순간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는 이성의 선한 면을 잃고, 내면의 악마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음모론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셔머는 2007년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Why People Believe Weird Things)’에서 사람들에게 이상한 것을 믿게 하는 25가지 사고의 오류를 지적했다. 성급한 일반화, 증명의 부담, 실패의 합리화, 권위주의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이다. 그는 인간이 이런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도록 진화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음모론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과 투명성을 무기로 음모론과 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서는 특히 극우 정치 유튜버들의 선동에 의한 폐해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유튜버의 선동에 사람들이 휩쓸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쁜 영향력을 끼친 사례는 거의 항상 예외적이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대개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일어난다. 고령화, 빈곤, 탐욕, 삶의 비극, 투자 사기, 연애 실패, 또는 국가 위기 상황 속 유력 정치인 등이 그런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셔머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서 9·11 테러 자작극, 선거 조작 세력, 코로나19 백신 사기 등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맹신하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똑똑해서라고 주장했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로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합리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거기에 심어놓은 컴퓨터 칩으로 빌 게이츠가 우리를 조종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있다고 치자. 그 심연에는 거대 제약 회사의 증거 조작에 관한 불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탄핵 재판 중인 윤 대통령의 태도다. 대통령다운 상식과 중립을 지켜야 할 텐데 요즘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 유튜버들만 바라보는 것 같다. 당신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고 했는데 윤 대통령의 행동도 음모론의 논리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윤 대통령은 아마도 자신의 음모론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가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방지할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법치가 중요하다.”

―정치적 난맥상 속에 개헌 논의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 시스템을 바꾸는 방식이 고려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항상 정부 내에서 한 사람이나 한 기관이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지 않도록 충분한 견제와 균형(권력분립)이 필요함을 지지해왔다. 권력 집중은 부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분립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도 원치 않기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관세 전쟁? “트럼프는 실제로 관세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협상을 위한 도박이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식을 보면서 미국이 더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지하는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출 주도의 산업국가인 한국으로선 트럼프 2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미국과 더 나은 무역 협정을 협상하라.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관세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것을 미국 기업을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성사시키는 ‘도박’(bargaining chips)으로 사용한다고 본다. 친(親)트럼프 인사인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는 ‘관세가 트럼프의 협상 방법’이라고 했다.”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리성을 믿는 과학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에 기반한 상식적인 정책이다. 예를 들어 성별은 스펙트럼이 아니라 이분법적이라는 것,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은 효과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람들을 더 인종차별적이고 편협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공화당이 추진해온 전통적 가치와 정책, 예를 들어 세금 인하, 규제 축소, 자유무역, 더욱 촘촘한 국경 관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 등을 기대한다.”

◇정의 사회? “결과의 평등 아닌, 기회의 평등”

―그렇다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 헌법에 기반한 가치를 넘어 ‘지식 헌법’(Constitution of knowledge)으로 인류의 가치를 새롭게 세워야 할까.

“지식 헌법은 한국은 물론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헌법의 기초가 돼야 한다. 지식 헌법은 이성과 증거에 기반을 둬야 하며, 정의·자유·권리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현실적인 비전에 기초해야 한다. 인간은 지능·성격 등 많은 것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데,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있으므로 정의로운 사회의 목표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어야 한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절대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이성·합리성을 촉진하며 도덕적 우주의 아치를 매일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일을 너무나 즐기기 때문이다. 은행 계좌의 복리처럼, 작은 변화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다면 앞으로 수백 년 뒤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셔머는 자신의 인장을 찍듯 답변지의 맨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Ad astra per aspera!)”



■ 마이클 셔머는…

30년간 ‘과학’으로 사이비·가짜뉴스 진실 분석


미국의 과학 저술가이자 학자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등과 함께 사이비 과학과 음모론에 맞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을 벌여왔다. 이 운동의 중심인 ‘스켑틱(Skeptic) 소사이어티’와 저널 ‘스켑틱’을 창간해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석사,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학에서 심리학, 진화론, 과학사 등을 가르쳤다. 현재 미국 과학 및 건강위원회 고문이다. 아울러 다양한 매체에 음모론과 관련한 칼럼을 썼고,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덕의 궤적’ ‘스켑틱’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믿음의 탄생’ ‘진화경제학’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인구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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