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눈 대신 치워준 고마운 이웃들
요즘 보기 힘든 ‘아날로그 풍경’

얼굴 보며 대화하는 사람 수 줄어
아주 친한 사람 외엔 교류 단절

가벼운 인사·잡담 나눌 수 있는
이웃과의 ‘적당한 소통’ 그리워


지난 1월 하순, 내가 사는 미국 프로비던스에 연일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눈도 꽤 많이 내렸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눈 치울 일이 걱정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갔다. 마침 길가에 나와 있던 옆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허리 때문에 눈을 다 못 치울 수도 있겠다고 양해를 구하자 그는 삽을 들고나와 함께 치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두 집 건너 사는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더니 내 삽을 가져가 집 주변의 눈을 다 치워주었다. 다 치운 뒤에 두 사람은 내게 무리하지 말고 잘 쉬라고 인사를 건넸다.

옛날 서울 계동에 살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살던 한옥은 골목 맨 안쪽에 있었다. 큰 눈이 내리던 날 아침, 창문을 통해 내다본 눈 덮인 기와 물결은 무척 아름다웠다. 제설용 삽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더니 눈은 이미 다 치워져 있었다. 누가 언제 치웠는지 궁금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앞집 총각이 항상 골목 끝까지 치운다면서 “그냥 눈 치우는 걸 좋아하나 봐”라고 하셨다. 계동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눈을 치워 보지 못했다. 정말로 그 일을 좋아하는 분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총각의 연락처는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살던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지금 사는 미국에서도 이웃들과 잘 지내고 있다. 서로 아이가 있거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불화와 갈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만 보면 대체로 관계가 좋은 편이다. 서로 말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것은 필수다. 친하면서도 먼 묘한 관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들과의 관계는 부담이 거의 없는, 복잡한 일상의 쉼표 같다.

이런 이웃과의 관계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각인된다. 보기 좋은 풍경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아름답다고까지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좀 있는 것 같다.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집 앞에서 이웃끼리 스스로 모여 잡담을 나누며 눈을 치우는 것은 2025년에는 흔히 보기 힘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일이다. 미리 시간을 맞추기 위한 문자 연락 같은 건 없다. 옆집 아주머니와 이메일 소통은 간혹 한다. 긴 여행으로 집을 오래 비우기 전에는 여동생이 오며 가며 집을 돌볼 거라고 미리 이메일을 보내놓는다. 그 외에는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거나 짧은 잡담을 나누는 게 전부다. 두 집 건너 사는 아저씨와는 그조차도 없다. 산책하면서 그 집 앞을 지날 때 우연히 만나면 인사를 나누거나 잡담만 나누고 갈 길을 간다.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디지털 혁명으로 생활이 정말 편리해졌다.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많은 일이 예전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다 보니 어쩌면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은 지나간 옛 시절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쉽고 간단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자. 디지털화로 인해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었다. 하루에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수가 절대적으로 줄었다. 그 대상도 함께 사는 가족이거나 사적으로 아주 친한 사람들, 아니면 학교나 직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정도이다. 이들과의 관계는 깊을 수밖에 없고, 대화의 내용도 깊으면서 때로는 복잡하다. 여기에 동반하는 감정 역시 단순하지 않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잡담 정도만 주고받다가 헤어지는 사이는 거의 없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그런 인간관계를 그리워하게 되고, 그런 그리움이 마치 아날로그를 향한 그리움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이웃들이라고 예전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지난가을, 두 집 건너 그 아저씨 집 앞을 지나면서 핼러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많이 올 것 같으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거의 없을 거라고 했다. 최근 동네로 젊은 부부가 많이 이사 왔는데 아이가 없는 집이 많고, 이웃들과 거의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핼러윈 같은 동네 잔치에 관심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산책하면서 집 정원을 가꾸는 젊은 부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는데 반응이 없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저씨 말이 맞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젊은 부부가 못된 사람으로 여겨져 불쾌하기도 했다. 그 순간 문득 내가 갑자기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자기들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우리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던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그 나이의 어른이 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런 실망감으로부터 탈출구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젊은 부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나의 인사를 잘 받아주고 잡담을 유쾌하게 나눌 수 있는 나의 이웃들과 아름다운 아날로그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자 집 밖으로 나가 마주하는 산책길 옆집과 나누는, 짧고도 단순한 인사와 잡담의 순간이 더 소중하고 애틋해졌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응답하라, 아날로그 시간’이 나에게만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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