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듯 SNS를 하며 타인의 발자취를 관찰하는 시대, 말은 기억을 넘어 기록으로 남는다. 대중의 시선이 쏠리는 유명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실수를 한다. 당시엔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엔 지우고 싶은 오점으로 남는다. 여기서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심판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평범했던’ 시절 무심코 남긴 말이 ‘평범하지 않은’ 현재의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시간차 발목잡기다. 더구나 타인을 할퀴는 혐오의 언어였다면, 현재의 나를 무너뜨릴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3월 2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밀리아 페레즈’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무명 시절 토했던 과거의 말로 영예를 맞이해야 할 현재 나락에 빠졌다. 트랜스젠더 배우로서 최초로 오스카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가스콘은 유력 후보였다. 그런데 그가 과거 트위터(‘X’의 전신)에 남긴 말들이 그를 끌어내렸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염두에 둔 듯한 “(오스카가) 흑인과 한국인의 축제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흑인을 차별했고, 히틀러를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파문이 일자 그는 사과했지만, 모국인 스페인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말해 다시 화를 돋웠다. 결국 제작진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만났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조만간 만날 예정이다. 대권을 노리는 이 대표로선 모두 잠재적 경쟁자들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통합 행보에 나서고 있음에도 비명(비이재명)계와 일부 국민은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불과 1년 전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 안팎에 깊숙이 ‘공포’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되기 전엔 친족에까지 모진 말을 쏟아냈던 그다.

이 대표 주변 인사들은 그가 타인을 경청하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 본인 스스로도 “예전엔 독했지만, 이제 많이 변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대표의 과거 말과 행동으로 그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이미지다.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물을 다시 채울 순 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건 결국 현재의 말과 행동이다.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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