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프와 스프는 다르다. 양식을 먹을 때 주메뉴 전에 죽처럼 나오는 것을 수프라고 하고, 라면을 끓일 때 국물을 내기 위해 넣는 것을 스프라고 한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수프’는 있지만 ‘스프’는 없는 것을 보면 스프는 규범으로는 인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쓰이는 말까지 포함된 사전에서는 스프를 ‘라면 국물을 만들기 위한 수프’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아무리 스프가 현실에서 많이 쓰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틀린 말이 되는 셈이다.
스프의 탄생은 인스턴트 라면과 맥을 같이한다.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직접 면을 뽑고 국물을 낼 필요 없이 공장에서 만든 것을 간편하게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만든 것이 라면이다. 면은 튀기고 말려서 포장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국물은 포장, 배송, 보관 등이 모두 어렵기 때문에 농축해서 면과 같이 포장한 뒤 면을 끓일 때 정해진 양의 물에 희석해서 쓸 수 있게 한 것이 스프다. 라면의 원조는 일본이니 이것을 개발하고 이름을 붙인 것 역시 일본이다.
서양의 수프와 라면의 국물은 엄연히 다른데 왜 일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일까? 사실 수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우리는 분말 형태로 판매되는 ‘크림스프’가 가장 익숙하다. 이것을 물에 푼 뒤 끓여서 먹으니 아무래도 이에 이끌려 국물을 농축해 분말이나 액체 형태로 만든 것에 이런 이름을 붙인 듯하다.
일본에서는 양식의 일부이든 라면에 포함된 것이든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어에서는 ‘으’와 ‘우’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을 따르자면 둘 다 ‘수프’라고 해야 하지만 우리는 수프도 시판 중인 ‘크림스프’에 익숙하니 양식의 그것마저도 ‘스프’라고 한다. 규범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따를 것인가? ‘수프’로 통일하는 것도, 라면에 넣는 것은 ‘스프’라고 따로 부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현실을 따라 먼 훗날 ‘스프’로 통일될 수도 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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