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 파면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헌재는 피청구인 측의 변론기일 연장과 증인 채택 요청 등을 일거에 거절하고 재판을 신속히 처리할 의지를 비쳤다. 이에 피청구인 측 변호인단은 절차적 불공정성을 토로하며 ‘중대한 결심’을 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은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탄핵 반대)으로 나뉘어 어느 경우든 헌재의 판결에 대한 후폭풍이 우려된다.

헌재는 본래 13일 8차 변론기일을 마지막으로 예정했었는데, 오는 18일에 한 번 더 갖기로 했다. 헌재의 어쭙잖은 변론기일 연장은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의 ‘탄핵 속도전’에 대한 여론의 급속한 악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헌재는 이미 지난 3일 마은혁 국회 추천 재판관 후보에 대한 임명 추진을 위한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불과 2시간 앞두고 연기함으로써 재판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게 한 바 있다.

헌재의 공정성이 비판받는 것은, 국회 지배 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속전속결 전략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굳이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 일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기 탄핵과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탄핵 속도전을 벌이고 있음이 자명하다.

헌재가 야당의 속도전에 발을 맞추려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문 소장 권한대행을 포함한 우리법연구회(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존재다. 문재인 정부 때 김명수 국제인권법·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이 대법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진보 정치 정향을 가진 판사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관여한 재판에서, 최근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 2심 무죄 판결과 같이,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 이뤄지고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이 일어났다.

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결정이 4 대 4로 기각됐지만, 이는 재판관의 정치 정향과 일치해 나뉨으로써 우리법연구회 출신 재판관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사법부 내 비공식 조직이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재판소법 제4조 및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위반이다. 군사 정부 시절의 ‘하나회’와도 같은 우리법연구회는 해체돼야 마땅하다.

탄핵심판의 속도를 내자는 찬탄 측은 헌정 위기를 조속히 끝내고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자는 데서 명분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신속성보다는 공정성에 기반한다. 모든 국민에게 자신을 변호할 공정한 기회와 적법한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있어서도, 12·3 비상계엄이 아무리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 성격과 내용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하니 충분한 변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헌재는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체적 진실을 신중하게 파악해서 판결해야만 한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대한민국 헌정(憲政) 위기는 대통령과 국회 간의 정통성을 둘러싼 극한 대립 투쟁으로 오로지 헌재의 엄중한 공정성만이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장할 것이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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