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해 남성에 경고만 하고 복귀…"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위반"
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의 위험성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담당 경찰관에게 징계 처분을 한 것이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박모 씨가 소속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불문경고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3일 확정했다. 경기 고양시의 파출소에서 경위로 근무하던 박 씨는, 지난 2021년 8월 14일 ‘동거남과 시비가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다.
최초 출동 시 동거남 A 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으나 폭행 사실을 부인했고, 피해자는 "폭행당했냐?"는 경찰관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A 씨를 내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박 씨는 A 씨를 밖으로 내보냈고 ‘술을 깨고 들어가라’고 한 후 복귀했다. 이후 피해자는 ‘동거남이 다시 왔다’, ‘동거남이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는 등 여러 차례 신고했다. 박 씨는 해당일 오전 4시 32분부터 7시 47분까지 세 차례 출동했으나, A 씨에게 경고만 하고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A 씨 사건은 112 신고 시스템상 사건 분류 코드를 ‘가정폭력’이 아닌 ‘시비’로 입력됐고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표도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A 씨는 오전 8시 54분쯤 방범 철조망을 뜯어내 집에 들어갔고, 피해자와 술을 마시다 화가 나 폭행해 숨지게 했다. A 씨는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박 씨는 이 사건으로 견책 징계를 받았고, 이후 소청심사를 청구해 불문경고로 바뀌었다. 불문경고는 법률상 징계는 아니지만 일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행정처분으로 징계 처분에 해당한다. 박 씨는 "불문경고 처분도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은 "원고(박 씨)는 신고내용의 실질이 가정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관한 지령을 받고 수 차례 현장에 출동했음에도 현장출동 경찰관이 취해야 할 조치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며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서 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강구하는 데 소홀했고 112시스템 상의 사건 종별 코드를 ‘가정폭력’으로 변경하지 않아 원고가 속한 순찰1팀과 근무 교대를 한 순찰2팀이 이 사건에 대해 가정폭력 사건임을 전제로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지적했다.
노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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