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탄핵소추 뒤 尹 지지율 최고점
李 포비아와 헌재 불신의 영향
그래도 계엄 前 복귀는 불가능

30년 만에 新 9龍 경쟁 가시화
다양한 보수 스펙트럼 품어야
분열 막은 닉슨-포드 참고할 만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지금 최고인 것은 아이러니다. 보수 세력의 정치적 불모지인 광주에서도 15일 대규모 윤 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렸다. 지미 카터처럼 퇴임 뒤 활동으로 평판이 좋아진 경우는 있지만, 직무 정지된 대통령이 정상 직무 때보다 더 지지받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2022년 3월 대선 득표율(48.5%, 유효투표가 모집단)을 국민 전체 대상의 여론조사 방식으로 환산하면 37%(득표율×투표율 77%)였다. ‘잘하고 있다’는 직무 긍정률(한국갤럽 정기 조사)은 30%를 중심으로 등락하다가 지난해 4월 총선 뒤 급락해 계엄 선포 직전인 11월 말엔 19%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4일 탄핵 소추된 뒤 반전됐다. 지지율 성격인 ‘탄핵 반대’ 여론이 차츰 높아져 지난 주말엔 38%에 달했다. 대선 득표를 상향 돌파한 셈이다.

일할 때보다 일하지 않을 때 더 지지받는 미스터리는 첫째, 국정 방향은 옳음을 방증한다. 노동개혁과 탈원전 폐기 등 난제를 추진할 때는 불통과 김건희 여사 문제 등 부차적 흠결이 크게 보였는데, 이젠 과제 자체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둘째, 야당이 대통령까지 차지하게 해선 안 된다는 ‘이재명 포비아’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담화에서 “야당의 입법 독재”야말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했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늘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끄는 단체 명칭도 ‘세이브코리아(대한민국을 구하라)’이다. 셋째, 무리한 수사와 구속, 헌법재판소의 선택적 속도전과 ‘답정너’ 행태에 대한 불신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착각해선 안 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엄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탄핵심판의 핵심은 계엄 자체의 위헌성인데, 국민 눈에도 그렇게 비쳤다. 계엄 결단은 통치행위로 볼 수 있지만, 실행에 있어서 헌법을 위배해선 안 된다. 만에 하나, 파면할 정도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유로 탄핵이 기각돼 대통령직에 복귀할 경우, 지지율을 10%대로 끌어내렸던 부정적 요인들이 ‘이자까지 붙어’ 되살아나고, 정상적 국정은 더 힘들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주술적 확신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윤 대통령 주변에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야당에 대한 경고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지난해 4월 총선 이전에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의논을 시작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총선 승리보다 비상조치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는 등 변신 노력이 한창일 때는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유력시됐지만, 김 여사 문제 등에 잘못 대응하면서 기회를 날렸다. 계엄 시기도 최악이었다. 계엄 직전엔 더불어민주당이 집회에서 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지 못하게 할 지경이었다. 대통령이 ‘계몽’시키지 않더라도 국민이 야당을 심판하기 시작했는데, 계엄으로 망쳐버린 것이다.

이제 윤 대통령이 사즉생 각오로 결자해지에 나설 때다. 득표율 수수께끼 속에 답이 있다. 자신의 ‘옳은’ 국정 철학이 이어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된다. 태극기 시위대부터 탄핵 찬성 세력까지 자유민주 진영의 대동단결이 대전제다. 윤 대통령 본인도 안철수·이준석과의 연합을 통해 당선됐다. 자신이 검사 시절 수사했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원(舊怨)을 접고 윤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김문수 나경원 안철수 오세훈 원희룡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 홍준표(가나다순) 등 신한국당 이후 30년 만에 ‘신9룡’이 나타났다. 서로 비난하지만,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다양한 보수 스펙트럼의 이들이 빅텐트를 칠 수 있도록 정치적 매듭을 풀어주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탄핵 표결을 앞두고 사임했다. 승계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참모들 만류에도 닉슨을 사면하고, 재선 패배를 감내했다. 당시엔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이제는 탄핵 찬반으로 인한 공화당 파열, 전직 대통령 사법 처리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막은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윤 대통령도 주변에 “이런 식으로 대통령을 3년 하든 5년 하든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의지만 있으면 탈당과 임기 단축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 다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용식 주필
이용식 주필
이용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