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립습니다 - 나의 남동생댁 故 이영욱(1968∼2024)
나는 우리 남동생댁을 참 좋아했다. 크고 선한 눈망울과 마주치면 금방 사람 좋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런 동생댁이 8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며느리가 둘인 집안에 큰며느리인 새언니가 암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터라 둘째 며느리인 동생댁의 암 선고는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일이었다,
동생댁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50세가 가까운 어느 날 ‘형님! 저는 이제 학교에 그만 가고 싶어요’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그럼 그만둬. 그래도 돼’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도 그냥저냥 교사 생활을 이어가던 동생댁은 교직원 단체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면서 바로 퇴직을 했다.
오빠와 나, 그리고 일 년 휴직을 신청한 남동생은 곧바로 그녀를 위한 전원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공기 좋은 시골에 공들여 지은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동생댁은 8년 남짓 좋아하는 꽃을 키우며 예쁘게 살아주었다. 나는 옥수수를 좋아했던 동생댁에게 해마다 옥수수도 보내주고 꽃씨를 구하면 늘 가져다주었다. 그러면 동생댁은 반짝이는 색실로 설거지용 수세미를 한 보따리 짜주며 “형님은 저보다 나눌 곳이 많으니 많이 가져가세요”라고 했다. 주변에 이리저리 나누고도 남은 수세미를 나는 아직도 아껴 가며 쓰고 있다. 동생댁은 별이 되기 6개월 전부터 말기 암 환자 증상들을 겪기 시작했다. 급격히 사그라지는 동생댁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양가 식구들은 안타까움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동생댁이 떠난 후 감사하게도 장례식장에 동료 교사들이 문상을 많이 왔었다. 그리고 다들 나처럼 영정사진을 보고는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5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8년이라는 투병 기간이 무색하게 마치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 고운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일찍 떠나버린 동생댁이 너무 안타까워서 더 그랬으리라. 그동안 멀리서나마 동생댁을 걱정하고 지켜봤을 동료 교사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례가 끝난 후 부의금을 같이 정리하다 문득 눈길이 머무는 봉투가 하나 있었다. 그 봉투에는 이름 대신 ‘선생님의 옛 동료’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 선생님이 우리 동생댁을 많이 아끼셨으리란 생각이 들어 또 눈물이 났다.
먼 길 떠나기 얼마 전 동생댁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형님! 늘 감사해요. 형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저는 늘 든든합니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너무나 고마운 말이었다. 그래도 다음 생에는 그냥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 시누이올케 사이보다는 자매간일 때 훨씬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쌍둥이 아들을 반듯하고 훌륭하게 키워놓고 떠난 꽃 같던 동생댁의 명복을 다시금 빈다.
이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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