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간에 정치적 후유증은 작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한 가지 헌법적 질문과 그에 따른 과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면 대통령이 헌법적 위기 상황에서 헌법 수호의 책무를 다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은 대체 무엇인가? 헌법에는 제76조의 ‘재정·경제상의 긴급 처분·명령권’과 제77조의 계엄선포권밖에 없다. 전자는 경제적 위기, 후자는 정치적 위기에 각각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학 교과서에서는 이들 권한을 ‘국가긴급권’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장악한 국회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 즉 29건에 달하는 탄핵소추 남발, 위헌적 법률의 양산, 행정부의 기능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정부 예산 대폭 삭감 등이 ‘중대한 헌법적 위기’를 구성한다고 간주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그런 행위들을 ‘입법 독재’ 또는 ‘입법 내란’이라고 하기도 한다.
헌법 제77조는 계엄 선포의 요건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란, 군중에 의한 중대한 사회질서 교란이나 심각한 자연 재난 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은 국회의 무절제한 ‘탄핵소추권과 예산 심의·확정권의 남용’과 같이 비정상적 폭주가 행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에 이를 경우 ‘연성’ 헌법 위기로 간주하고 헌법 제77조의 ‘국가비상사태’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게 대통령과 국회 간에 견제와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사태를 방치한다면, 곧 국민이 선거를 통해 5년간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한 대통령이 국회의 폭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게 된다. 이게 과연 ‘헌법 정신’일까?
지금 국회는 헌법 수호 차원에서 탄핵소추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가 헌법 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한다. 이에 헌재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등 ‘헌법 정신’에 맞게 적절히 합목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단지 헌법에 적힌 단어를 문리해석하거나 형식과 절차에 매이는 건 헌재의 본분에 맞지 않는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 관철과 그의 제왕적 권력 약화에 치중해 성안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른바 ‘입법권 폭주’ 상황을 상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완 장치 마련이 앞으로 중요한 헌법적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요즈음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에 대한 군불 때기를 하고 있다. 그 명분으로 ‘1987년 체제의 종식’을 내세운다. 하지만 대통령 권력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제왕적이지 않다. 반면, 국회는 타협과 협치(協治)가 실종된 대결의 전장(戰場)이 된 지 오래다. 국회의 개혁 없이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대통령의 권력 구조를 바꾸기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은 정치권력 연장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 개정 시 대통령이 국회의 과도한 ‘권한 남용’을 억제하는 장치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