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향적 입장 표명으로 성사될 듯하던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예외’ 입법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임박하고, 중국 반도체의 도전만 고려해도, 대한민국 국회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여야는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해당 소위(小委)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민주당이 반대해 처리가 불발됐다. 민주당이 주 52시간 예외는 근로기준법으로 다루자고 했는데, 그러면 환경노동위원회로 소관이 바뀐다. 환노위 분위기를 보면 하지 말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민주당은 주 52시간을 빼고 법안을 처리하자고 한다. 반도체법에 예외를 두면 다른 분야의 요구가 이어져 근로기준법이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상임위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52시간 예외는 법안의 전체 내용상 꼬리에 불과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선 그것이 핵심이다. 이 대표 특유의 말 바꾸기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지난 3일 “고소득 연구·개발자에 한해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했지만, 이틀 뒤엔 “반도체 육성에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꼭 필요하냐”며 반대로 돌아섰다.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선 “장시간 노동과 노동 착취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궤변이고 식언(食言)이다.

이 대표는 최근 상속세 개편과 관련, 부동산 상속세는 18억 원까지 감면하는 반면, 핵심인 가업(家業) 상속 지원을 위한 최고세율 인하는 ‘초부자 감세’라고 외면했다. 상속세법 개정에도 핵심이 빠져선 소용없다. 실용주의 본색이 뭔지 의구심만 커진다. 이 대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말했지만, 민주당은 정반대로 움직이니, 이 대표 말을 믿는 국민만 바보가 될 판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