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경’서 열연한 배우 차주영

태종의 아내이자 세종의 엄마
“역사에 없는 부분 메우려 노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모험이었어요.”

배우 차주영(사진)은 tvN·티빙 사극 ‘원경’과 함께한 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더 글로리’의 ‘스튜어디스 혜정이’의 이미지를 지우고 태종 이방원의 아내인 원경왕후로 거듭난다는 것은 야심 찬 도전이었고, 차주영에게 이 역할을 맡긴 제작진 입장에서도 과감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숱한 사극 속에서 한 번도 주목받은 적 없었던 원경왕후의 기품 있고, 때로는 기개 넘치는 모습은 차주영을 통해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원경’을 마치고 지난 14일 취재진과 만난 차주영은 “전통 사극을 해보고 싶었는데, 당시 섭외가 들어온 대본 중 ‘원경’이 가장 과감하다고 느껴져서 선택했다”면서 “한 사람의 10대부터 죽는 날까지의 일대기를 다뤄야 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언제 이런 역할이 또 내게 오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경은 핑계를 대지 않고 줏대 있고 솔직한 여성인데 제 성향도 많이 묻어났다”고 말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 이방원, 그리고 그의 자식인 세종의 이야기는 역사로 상세히 기록됐다. 이를 각색한 사극도 다수 제작됐다. 하지만 태종의 아내이자 세종의 어미인 원경은 낯설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도 원경은 제 목소리를 내는 신(新)여성이었다. 세력가의 딸이라는 배경도 있지만, 원경이 가진 성정은 리더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다양한 문헌과 역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서 연구했지만, 원경왕후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고 한 차주영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제가 느끼는 만큼만 표현해내며 대본과 역사서로 설명되지 않은 빈 부분들을 메우려 했다. 과감하게 덜어낼 건 덜어내고, 담아낼 건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특히 어렵게 느껴졌다”고 촬영 당시 심경을 전했다.

차주영은 촬영 내내 4㎏에 이르는 가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대역 없이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장면도 만만치 않았다. 원경의 내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모습까지 표현해야 해서 몸고생과 마음고생이 심했다. 오죽했으면 목디스크가 아직도 ‘전리품’처럼 남아 있을까. 하지만 차주영을 끝까지 버티게 한 건 ‘원경의 사랑’이었다. 극 중 태종은 원경의 몸종을 후궁으로 들였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으나 원경과 태종이 애증의 관계로 흐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원경은 태종에게 “임금 노릇 하시느라 애썼다”고 말했고, 태종은 “그대가 있어 이 자리까지 왔다”고 화답했다. 실제 조선의 역사 그대로다. 차주영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사랑이다. 모든 이야기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났다”고 강조했다.

차주영은 긴 시간 붙잡고 있던 원경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텅 빈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배우로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이미 타이틀롤로서 가치를 증명한 그에게 여러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고, 그는 다시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원경’을 하고 나니 이제 못 할 게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책임감이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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