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hy - ‘하늘이법’ 추진 배경은
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 있지만
대전서 4년간 한차례도 안 열려
재직 교사 의무 진단 사항 없고
복직 때도 병원 소견서에 의존
당정, 교육공무원법 개정 추진
고위험자 대상 긴급 분리 조치
늘봄학교 동행 원칙 강화키로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8세 김하늘 양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교원의 정신건강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가해 교사 명모(48) 씨가 평소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사건 이전에 같은 학교 교사를 폭행하는 등 기행을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이 사건을 두고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명 씨가 무려 26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비판은 더 힘을 얻는다. 명 씨가 교사로 임용돼 어린 제자를 살해한 뒤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하기까지, 그를 막을 시간이 26년이나 있었던 셈이다.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로는 교사가 수차례 이상행동을 벌이거나, 스스로 정신질환을 고백하지 않는 한 학교에서 개별 교원의 정신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정신질환으로 직무 수행이 어려운 교원을 학생들과 분리시키는 ‘하늘이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원 정신건강 관리 공백 만든 ‘무용지물’ 제도 =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현재 정신질환을 이유로 교사가 교단에 서지 못하게끔 막을 방안은 사실상 없다. 일반적으로 시·도 교육청은 정신적·신체적 질환이 있는 교원이 교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 규칙이란 자치 법규를 운용하고는 있다. 교육공무원과 의료인·법률인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심의 대상 교원의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판단하면, 교육감이 직권으로 당사자에게 휴직 또는 면직을 권고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대전교육청의 경우 2021년 이후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됐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명 씨가 정신적 문제를 이유로 휴직 후 복직했을 때 완치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던 점도 이번 사건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원이 질병으로 휴직했다가 복직을 신청하면, 보통 본인이 제출한 병원 진단서 소견에 의존해 복직 승인 등 판단이 이뤄진다. 진단서상 직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이 적혀 있으면 복직을 제한하기 어려운 셈이다. 명 씨 역시 이 같은 사례에 포함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6개월 휴직에 돌입했다 20일 만에 조기 복직하며 ‘직무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의사 소견서를 제출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명 씨는 휴·복직 때 같은 병원의 동일한 의사에게서 소견서를 받았다. 휴직을 신청할 때 소견서에는 ‘최소 6개월 안정 가료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복직 때 제출한 소견서엔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20일 만에 명 씨 진단 내용이 크게 바뀌었지만 시교육청은 이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신과에 내원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휴직했던 사람이라면 복직 시 교육청에서 안전 문제를 확인했어야 했다”며 “물리력에서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극도의 적대감을 느끼고 있거나 피해의식 등이 있는지에 대해 복직 전 점검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직 중 정신질환 발생해도 알 방법 전무 =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보육시설 및 교육기관 직장가입자 우울증·불안 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초등학교 교직원은 7004명에 달한다. 하지만 교원이 재직 중 정신적인 문제를 겪게 돼도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학교가 알 방법은 없다. 현재 교사가 학생과 대면 교육을 진행해도 괜찮은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는 제도는 교사 임용시험 과정에서 치르는 인적성 검사가 전부다. 2년에 한 번 시행하는 건강검진 결과도 학교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A 씨는 “건강검진 결과나 정신병력 유무 등은 민감한 개인정보라 의무 제출하게 하면 교사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며 “정신과에 내원한다고 하면 학교 내외적으로 받게 될 시선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교육부의 늘봄학교(돌봄교실) 운영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A 초교의 ‘안전 불감증’ 역시 이번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의 늘봄학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돌봄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은 수업을 마친 후 보호자 또는 보호자 지정 대리자에게 인계돼 함께 귀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A 초교 인근 B, C 초교 역시 “동행 귀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귀가하는 아이를 보호자 또는 대리인에게 직접 인계하고 있었다. A 초교도 이 원칙을 인지하고 있었다. 문화일보가 입수한 A 초교의 2024학년도 초등돌봄교실 운영 계획 등에 따르면 A 초교는 돌봄교실 학생 관리 카드에 ‘자율 귀가 절대 불가 원칙’이라고 기재하는 등 보호자 또는 대리자 동행 귀가가 원칙임을 명시했다. 하지만 굵은 글씨로 ‘부득이한 사유로 자율 귀가를 원할 시 자율 귀가 동의서를 작성 및 수합하고 귀가 안전지도’라는 내용을 추가하며 예외를 뒀다. 결국 학생의 안전을 위한 원칙 대신 학교가 ‘재량’을 택하며 김하늘 양을 지킬 울타리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 ‘하늘이법’ 통해 임용 단계부터 교원 정신건강 관리 = 교육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일명 ‘하늘이법’으로 불리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신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먼저 정신질환 등으로 주변에 위해를 가하는 고위험 교원이 생겨나면 해당 교원과 학생들을 긴급 분리 조치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또 긴급 대응팀을 파견해 치료 지원 및 이후 정상적 복귀를 돕겠다는 계획이다. 또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을 받은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교원직무수행적합성심의위원회’로 대체, 법제화할 예정이다.
전체 교원의 마음건강을 살피는 방안도 강화할 전망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교원의 입직 단계부터 전 주기적으로 마음 건강을 지원하겠다”며 “임용 단계부터 교원의 정신건강을 고려하고 재직 중인 교원에 대해 심리 검사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숙고하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교원양성과정 이수 기간 동안 받는 교직 적성 및 인성검사를 개선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또 교원 신규채용 시 임용시험 교직 적성 심층면접을 강화하고, 재직 중인 교원의 마음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지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마음 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안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안전 공백 우려가 일었던 늘봄학교의 귀가 원칙도 다시 확립된다. 당정은 이날 협의를 통해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초1·2 대상 ‘대면 인계·동행 귀가’ 확립 △학교 내 CCTV 설치 확대 △학교전담경찰관(SPO) 증원 통한 주변 순찰 강화 등에 공감했다. 다만 자율 귀가 자체를 원천 차단하지는 않았다. 교육부는 “현행과 같이 보호자가 자율 귀가를 강하게 희망하고 자율 귀가 동의서를 작성·제출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자율 귀가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귀가 중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귀가 지원 인력을 보완하고, 귀가 알림을 체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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