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안 인터뷰 - 조항주 의정부성모병원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
수술 좋아 외과로 진로… 총상환자 경험 위해 파병 지원
이라크 어두운 컨테이너서 헤드라이트 의존한 채 수술도
2011년 ‘외상외과’ 신설… 2014년 ‘권역외상센터’ 지정
환자들 억울한 죽음 없도록 ‘골든아워’ 위해 365일 사투
의정부 = 권도경·유민우 기자
보법이 다른 진료과가 있다. 1분 1초마다 사선을 넘나드는 곳, ‘골든아워’를 넘어 분 단위인 ‘플래티넘 미닛’을 벌기 위해 의료진이 사투를 벌이는 곳, 바로 외상외과다. 이곳은 교통사고와 산업 재해 등을 당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한다. 중증외상은 국내 10∼49세 인구가 가장 많이 사망하는 원인이다. 한국 외상외과 역사는 20년이 채 안 된다.
외상외과 개념조차 없던 2000년대 중반 고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간 의사가 있다. 그는 외과를 택한 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을 자원했다. 귀국 후엔 응급환자는 많지만 대형병원은 적었던 경기 북부 지역으로 갔다. 밤엔 응급수술이 많아 3∼4년간 ‘줄당직’을 설 때가 부지기수였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선 수당 한 푼 받지 않고 소방 헬기와 군 헬기를 가리지 않고 다 탔다. 외상외과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는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의 시금석이 됐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아주대병원에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를 키울 때 의정부성모병원에서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를 만든 조항주 센터장(대한외상학회 이사장) 얘기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 교수의 ‘실사판’으로도 불리는 조 센터장을 지난 10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외상센터는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곳”이라며 “환자를 살릴 때 나도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의대생 시절 조 센터장이 지망했던 과는 내과였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가톨릭의대 본과 3학년 때 첫 병원 실습에서 경험한 수술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밤마다 외과 교과서를 탐독했다. 고민 없이 외과 전공의를 택했다. 외과 레지던트 4년 동안 집에 거의 가지 않은 채 모든 수술을 마스터하겠다는 기세로 치열하게 배웠다. 외과 전문의를 딴 후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입대 전 조 센터장은 체중 미달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군의관에게 매달렸다. 사회에서 뭔가를 하려면 병역 의무를 제대로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의 시험을 치르면서 살을 찌웠다. 재검을 받고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했다. 2004년 말엔 해외 파병을 지원했다. 파병 기회가 아니면 총상 등 다양한 환자 사례를 경험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2005년 9월 이라크 자이툰부대로 떠났다. 자이툰부대 의무부대는 사실상 외상외과처럼 진료를 봤다. 조 센터장은 모든 게 ‘운명’ 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자이툰부대에서 외상의 기본을 사실상 다 경험했어요. 제가 수술을 못 하면 환자는 약 1000㎞ 떨어진 이란으로 가야만 했어요. 선택지가 없었어요. 신경외과 외엔 거의 모든 수술을 다 했어요. 주로 이라크인들을 많이 수술해줬는데 파편이 박힌 환자나 장파열 환자, 화상환자들이 많았어요. 컨테이너에 수술실이 있었는데 수술등이 하나라 수술 부위에 그늘이 져서 항상 헤드라이트를 끼고 수술했습니다. 미군에게 미군 외과 수술 매뉴얼인 ‘전쟁 응급수술(Emergency War Surgery)’이란 책을 선물 받았는데요, 그 책엔 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배우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 많았어요. 미국 외상외과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죠. 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대 직후 2007년 조 센터장이 선택한 곳은 의정부성모병원이었다. 경기 북부 일대와 강원 지역 환자들까지 오면서 야간 응급수술이 많은 병원이었다. 그는 밤마다 응급수술을 도맡았다. 수술 속도가 다른 의사보다 서너 배 빠르고 “손이 좋다”고 소문났다. 당시 김영훈 의정부성모병원장이 그를 눈여겨봤다. 조 센터장에게 세부전공으로 외상외과를 권한 것이다. 병원도 고민이 깊던 시기였다. 외상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아 다발성 외상환자들이 숨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병원장이 힘을 실어줬다. 2009년 의정부성모병원에 중증외상특성화센터가 생겼다. 조 센터장이 2011년 중증외상특성화센터장을 맡은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엔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외상외과 신설을 승인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환자를 반드시 살린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만큼 제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기도 했죠. 수술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의료 취약지인 경기 북부 지역은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보다는 외과의사로서 기회가 많을 것 같았어요. 중앙분리대가 없는 좁은 도로와 야간 조명이 없는 곳이 많아 교통사고가 잦았어요. 공단도 많아 추락과 끼임 등 산업재해도 많았죠. 지금도 내원하는 중증외상환자의 60%는 교통사고, 30%는 산재환자예요. 중증외상특성화센터가 생긴 이듬해인 2010년에는 한 달에 당직을 13∼14일 서면서 수술만 100여 건을 했어요. 2007년엔 외상외과에서 국내 처음으로 복강경 시술도 성공했습니다. 환자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흉터를 줄이려고 노력했었죠.”
기회가 왔다. 보건복지부가 2012년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의정부성모병원은 ‘삼수’ 끝에 2014년 선정됐다. 조 센터장은 2015년 3월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으로 임명됐다. 외상센터로 지정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는 줄었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응급환자를 제외한 외상환자만 봐야 하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경기 북부와 강원 지역 대형 소방서 10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외상환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먼 곳에서 다친 환자를 빨리 이송하기 위해 소방서와 군에 협조를 구해 헬기도 탔다. 환자는 다시 늘었다.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에선 외상외과 의료진 8명이 매년 평균 800여 명의 중증외상환자를 본다.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 중에서 3년째 2위를 차지했다.
“경기 파주시, 양주시, 동두천시부터 강원 철원군까지 소방서를 안 돈 곳이 없었어요. 자녀들이 태어났는데도 가 보지 못했어요. 잘못되면 외상센터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권역외상센터가 개소한 이듬해인 2019년엔 설비투자비 탓에 적자만 100억 원을 기록했어요. 지금은 적자 규모를 10분의 1 정도로 줄였는데 흑자가 난 해도 있었어요.”
외상센터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권역외상센터는 전담의사를 28명 두도록 규정돼 있지만 전국 17개 센터 중 한두 곳만 이 기준을 채웠다. 외상센터는 우리 사회 아픔을 투영하는 축소판이기도 하다. 중증 외상 특성상 사회적 약자가 많이 다친다. 외상환자는 병원 경영 측면에선 반갑지 않은 존재다. 중증외상환자는 수술 후 치료가 본격화돼 재원 기간은 길지만 의료 자원은 많이 투입된다. 조 센터장의 목표는 중증외상 환자 생존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누가 메스를 잡든 환자를 살릴 수 있도록 외상치료의 표준을 세우면서 질적 관리를 하고 있다.
“외상센터의 목적은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정부가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97년 50%가 넘었던 우리나라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15% 아래로 떨어졌어요. 수술실에서 절망스러울 때도 많지만 치명적인 부위를 처치하면 환자는 극적으로 좋아집니다. 수술실 앞이나 외래 진료실에서 환자나 가족들이 고맙다고 말하는 것만큼 정신적으로 보상되는 게 없어요. 중독성 있는 보상이죠. 외상외과니까 느낄 수 있는 보람이라고 봅니다. 의사로서 이상을 이루기엔 외상외과가 가장 적합하다고 봐요. 의사의 사명은 환자를 살리는 데 있으니깐요.”

“시간이 곧 생명” … 10년간 위험수당도 안받고 소방·군헬기 닥치는대로 타
“헬기를 탈 때는 환자를 살릴 생각만 해요. 다른 것(위험, 수당)은 생각 안 합니다.”
조항주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은 의정부성모병원이 권역외상센터를 준비하던 2012년부터 헬기를 타기 시작했다. 중증외상환자를 빠르게 이송해 골든아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의정부성모병원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닥터헬기’가 없었다. 대신 조 센터장은 소방청과 군에 요청해 헬기에 탔다. 조 센터장이 헬기를 요청할 때도 있고, 군과 소방서가 외상환자 이송을 부탁할 때도 있다. 어느 경우도 조 센터장은 가리지 않았다. 중증외상환자에겐 시간이 생명이다. 생존율은 이송시간에 달렸다. 육로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헬기를 타면 5분이면 충분하다. 당시엔 수당도 없었다. 조 센터장은 10년간 위험수당을 단 한 번도 받지 않고 헬기에 매번 올랐다. 조 센터장과 같이 일하던 김마루·이대상·홍태화 외상외과 교수도 헬기를 앞다퉈 탔다. 헬기로 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이들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재건축 현장이나 북한산 등에서 헬기 하강훈련을 받았다. 사명감으로 뭉친 이들은 의료계에서도 ‘별동부대’로 꼽힌다. 지난해부터는 소방청과 ‘의사탑승 119헬기 사업’을 시작해 시스템과 여건도 좋아졌다.
의정부성모병원은 외상 환자 치료를 위해 군과 소방청과도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조 센터장은 “외상센터는 특성상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며 “외상 환자가 많은 소방청, 국군, 미군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는 미군의 외상환자 치료·이송 훈련에도 수차례 참여했다. 미군 헬기만 10여 대 동원되는 대규모 훈련이다. 조 센터장은 “외상외과 의사라면 크게 다친 중증환자를 보면 살리겠다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열상, 총상 환자가 많은 미군 외상 시스템을 배울 수도 있고, 미군이 어렵다고 판단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어서 보람도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