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
“백 선생이 1997년 만든 로봇
‘김양수 경기 따라지’라 불러”
백과 인연 담은 ‘로봇전’ 진행
28일까지 설계 도면 등 선봬
“어느 날 백 선생님 스튜디오에 갔더니 저를 비디오 조각으로 만들고 계셨어요. ‘자네는 땅딸막한 데다가 머리와 가슴에는 야한 생각밖에 없잖아. 그래서 비디오는 플레이보이 모델 영상을 담아, 핑크색으로 칠했어.’그리고 그 로봇에 ‘김양수군 경기 따라지’라고 쓰셨죠.”
천재 예술가로 불린 고 백남준(1932∼2006)의 1997년 작품 ‘MR. KIM’에 대한 김양수(75) 두손갤러리 관장의 설명이다. 김 관장은 199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갤러리와 에스프레소 바를 운영했다. 당시 세계 미술계 거장이었던 백남준은 경기고 후배이자 예술 마니아인 김 관장을 무척 아껴서 그를 모델로 로봇 작품을 만들었다.
김 관장은 그런 인연을 되살려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Human tech for future’를 서울에서 열고 있다. 오는 28일까지 두손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로봇 작품 사진과 설계 도면들을 선보인다.
김 관장은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시내티시에서 갤러리를 하며 백남준 선생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마크 팻츠폴(Mark Patsfal)의 자료 중 로봇 제작과 관련된 것만 엄선해서 전시했다”라고 소개했다. 마크 팻츠폴이 은퇴함에 따라 그의 자료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들을 한국에 가져와 우선 서울서 전시하게 됐다는 것이 김 관장 귀띔이다.
백남준은 1964년 ‘로봇 K-456’을 제작한 후 일생에 걸쳐 로봇 작품 400∼500점을 만들었다. TV 모니터, 라디오, 카메라, 스피커 등을 이용해 만든 그의 로봇은 인간을 닮지 않았다. 머리, 몸통, 팔다리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진 로봇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신체 각 부분의 모니터에서는 정교하게 계산된 영상이 송출된다. 머리와 가슴 부분 모니터에서 생각과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로봇의 인간화가 이뤄진다. 백남준은 그런 로봇에 ‘할아버지’ ‘할머니’ ‘소녀’란 이름을 붙였다. ‘장영실’ ‘반 고흐’ ‘갈릴레오’ 등 역사 인물도 있고,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들 이름도 있다.
김 관장을 모델로 한 ‘김양수군 경기 따라지’는 브루클린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사진 모델에 모니터를 설치했는데, 거기서 가슴을 드러낸 플레이보이 여성 모델 영상이 흐른다. 그 앞 벽면에 ‘19금’이라는 표지가 있는데, 이 작품을 본 미술 저널리스트인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백남준이 후배 김양수에 대한 애정을 성적 위트로 작품에 담아낸 것을 후학이 알아봐 준다는 표지인 셈이다.
“로봇 모델이 된 사람 중 생존자는 유일하게 저 뿐이에요(웃음). 아시다시피, 백 선생은 테크놀로지에 인성을 심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는 것을 예언한 분이죠.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로 그 방향을 제시했지요. 요즘 AI가 세계의 첨단 화두가 됐는데, 백 선생은 30∼40년 전 그걸 예술작품으로 보여준 예지자입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잊어지는 작가가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에스트로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 관장은 한국 미술계에서 1세대 갤러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15세인 중학교 2학년 때 지순택의 도예작품을 접한 후 고미술에 빠졌고,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에 청계천 8가에 골동품 가게를 차려 고미술 수집가의 길을 시작했다. 1984년 갤러리 ‘두손’을 열었는데, 자신의 이름(양수·良洙) 한자를 ‘兩手’로 가상해서 지은 명칭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 미술의 유망 작가들과 미국 현대미술 스타들을 소개하고 후원했다.
그는 1990년 스위스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처음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1992년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연 백남준의 국내 첫 회고전을 기획한 이가 김 관장이었다. 그는 뉴욕으로 건너간 후 소호에서 백남준과 십 수년간 빈번히 만나며 미디어아트 전문 공간(New York Center for Media Art)을 만들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 서울로 돌아와 ‘갤러리 인터아트’ ‘인터아트채널’ 등의 이름으로 활동했다. 2022년 ‘두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고 개화기에 문을 연 공간 구세군회관에서 갤러리 재개관을 알렸다.
“은퇴를 해야 할 나이가 지났지요. 하지만 한국 문화가 세계의 미래를 리딩할 수 있는 시기에 그냥 물러난다는 게 비겁하게 느껴지더군요. 아트 컨설팅 어드바이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는 꼭 해야 할 일로 오는 2032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백남준 예술의 현재성을 더 널리 알리는 작업을 들었다. 또 하나, 우리 고미술품의 미학이 해외서 크게 인정받도록 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술품을 마치 증권 투자하는 것처럼 여기는 시대이지만, 저는 아직도 갤러리가 치유의 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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